2015년도 박사학위 수여식 축사(2015년 9월 24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박사학위를 받으실 211명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여기에는 여성 55명, 유학생 61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대학 박사학위 수여자는 이로써 누계 41,964명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부학장, 연구과장, 학관장, 학사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학위 취득자 여러분의 가족, 친구, 관계자 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오늘 학위 수여식에 참석해 주셨을 줄 압니다. 학위 수여자 여러분이 오늘을 맞은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도와 주신 주위 분들 덕분입니다. 저희 교직원 일동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고생하고 지원해 주신 가족분들께 감사 말씀 드리며 오늘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학위 취득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한 결실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몇 번이나 좌절의 문턱에서 고뇌의 나날을 경험하신 분도 계실 줄로 압니다. 특히 유학생 여러분의 경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에서 학문을 닦는다는 것은 여간 노력하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며 대학원에서 전문 공부에 매진한 결과 그 전문 분야에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오늘 교토대학 박사학위 수여라는 형태로 인정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그 누구도 겁내는 일 없이 이제까지 갈고 닦은 개성을 발휘하며 쌓아 온 전문성을 살려 세계가 직면한 과제에 맞서야 합니다. 격동의 시대, 여러분이 이제 발 들여놓게 될 세계에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취득할 학위는 그런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근거와 자신감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연구한 성과를 활용해 전문 분야뿐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움직임에 발맞춰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인생을 걸어 나가시길 빕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프로페셔널한 연구자로서 자각과 긍지를 지니고 나아가셔야 합니다. 과거의 교토대학 연구자에게서 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12일 히로시마현 하쓰카이치시에서 교토대학 '원폭 재해 종합 연구 조사반' 위령 모임이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70년 전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교토대학 연구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1945년, 원폭 투하 약 한 달 후인 9월 3일 교토대학의 전신인 교토제국대학은 의학부, 이학부, 화학연구소 교수와 학생 약 50명이 조사반을 결성해 폭심지로부터 약 20km 떨어진 오노무라(현 하쓰카이치시)의 병원에서 피폭자들을 치료하고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병원은 같은 달 17일 그곳을 덮친 마쿠라자키 태풍으로 발생한 토석류의 직격타를 맞았고 이에 휩쓸린 1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입원 환자를 포함해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매년 9월 17일 직전 토요일에 그 앞에서 위령 모임이 열리는데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많은 관계자들이 그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그 때 유족과 관계자 분께 몇몇 당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매우 인상에 남은 말이 있습니다. 당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의학부 마시모 도시카즈(真下俊一) 교수님의 자제분이신 요시오(芳夫) 씨에 따르면 교토에서 원폭 투하 소식을 들은 마시모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약속했던 바와 다르다"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물리학에도 정통했던 교수님은 원자핵 핵분열 반응을 무기로 이용하는 데 연구자가 동의할 리 없다고 믿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나 버린 참화를 직시한 교수님은 즉시 구조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한밤중에 황급히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연구자로서의 자각과 긍지를 느꼈습니다. 2011년 시란카이(芝蘭会) 히로시마지부가 펴낸 <'기념비 건립/위령 모임'의 발걸음>이라는 책자를 보면 교토제국대학 조사반이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니며 병태와 사인, 방사능 오염 실태를 규명하려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자 부족과 오염, 엄청난 파리떼가 들끓는 가운데 이루어진 조사와 치료였습니다. 이 사고로 뜻을 다 이루지 못한 채 스러져간 귀중한 생명과 그 유지를 반드시 후세에 이어가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합니다.

한 분 더, 전화 속에서 일본과 깊은 관계를 맺은 연구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하와이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 통신 암호 해독과 일본병 포로 통역에 종사했으며 1953년부터 약 2년간 교토대학에 재학했던 Donald Keene박사님입니다. 당시 교토에서 공부한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고쿠센야캇센(国姓爺合戦)' 연구로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같은 하숙집에 살았고 나중에 문부대신을 지낸 나가이 미치오(永井道雄)의 영향을 받아 박사님은 일본의 문화와 문학에 널리 관심을 가지고 그 보급을 위해 힘쓰게 되었습니다. 2008년 겐지이야기 천년기를 교토에서 개최하게 된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세계가 일본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 데는 박사님의 공적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박사님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박사님이 2차대전 전부터 일본 문학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일본이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시대에 일본어 습득에 매진하며 어떻게든 일본과 관계를 가지려는 마음 하나로 하와이, 중국, 영국 등을 전전했던 집념이 절절히 와 닿습니다. 박사님은 좌우명으로 바쇼(芭蕉)의 '오이노코부미(笈の小文)' 중 '드디어 능력도 장기도 없이 오직 이 한 길로 이어지다'라는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요즘 말로 치면 '전문 바보(전문 분야밖에 모르는 외골수)'로 자신을 규정하고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여기에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고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가치 없다고 업신여기더라도 한결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추구하며 이를 토대로 자신이 믿는 것을 세계를 향해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구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라 말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도 교토대학에서 고릴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래 계속 고릴라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고릴라에 관한 문헌과 논문은 모두 독파하고 고릴라에 관한 모든 화제에 귀 기울여 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 덕에 고릴라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인간만 봐 왔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의문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떤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기보다는 단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면서 그 길을 통해 인간에 가까운 연구를 하는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저 같은 관점에서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의문을 입 밖에 내지 않으면 그 의문은 세상에 알려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저는 제 전문 분야를 짊어지고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박사학위를 받고 앞으로 전문 분야의 프로로서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자기 전문 분야 외에는 불편해 하시는 분도 많으실 듯합니다. 하지만 좁아 보이는 전문 영역을 통해 세계는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도달한 고지는 앞으로 여러분이 세계를 활보할 수 있는 통행증이 될 것이며 세계를 변화시키려 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격동하는 세계의 편린과 만났을 때 그 전문 분야를 통해 연구자로서의 자각과 책임이 필요해집니다. 교토대학에서 배우고 자랑스러운 길을 걸었던 선배 연구자들을 본받아 밝고 풍요로운 미래를 구축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움을 통해 맺어진 여러분과 교토대학의 인연을 앞으로도 부디 소중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교토대학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초석이 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모교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고 동창회에 가입해 친목을 다지시며 이따금 모교를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 모국으로 귀국하시는 유학생 여러분도 각자 분야에서 활약하시는 동시에 반드시 동창회에 가입하셔서 교토대학, 더 나아가서는 일본과의 끈끈한 인연을 더욱 확고히 다지셨으면 합니다. 교토대학에서 배운 성과가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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