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학부 입학생에게 전하는 축사 (2020년 4월 7일)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43명 여러분, 입학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원래 오늘은 여러분과 직접 만나 축하 말씀을 전해 드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이렇게 영상으로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사람이 모이는 것이 바이러스 감염을 조장하는 바, 현재는 대학에 등교하는 것도 삼가 주시길 부탁드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감염을 막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제와 모든 사람의 긴밀한 협력에 달려 있습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이해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4월은 여러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신록이 산들을 물들이는 계절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지내게 될 교토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천혜의 풍부한 물을 지닌 비와 호에서 습기를 가득 머금은 채 히에이산을 타고 넘은 바람이 키워낸 녹음 풍부한 분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요시다 캠퍼스 바로 동쪽에는 요시다산이 우뚝 솟아 있고, 서쪽에는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가모가와와 시모가모(下鴨) 신사, 고쇼(御所)에 위치한 숲에 청량한 공기가 가득합니다. 이 숲을 이루는 수종 중 대부분은 조엽수라 불리는 상록수입니다. 교토대학 정문으로 들어서면 시계탑 앞에 있는 커다란 녹나무가 바로 눈에 띕니다. 녹나무는 교토대학 심벌마크이기도 한 조엽수로, 다가올 계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무입니다. 아시다시피 녹나무 같은 상록수는 낙엽수와 달리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습니다. 일 년 내내 푸르른 잎을 유지하며 새싹이 나면 오래된 잎이 떨어집니다. 이를 ‘상반목 낙엽’이라 부릅니다. 상반목은 상록수를 뜻하는 초여름 계어(季語, 하이쿠 등에서 계절을 상징하는 시어)로, 녹나무 잎이 지는 계절은 봄인데 작년 잎이 전부 떨어지고 파릇파릇한 새잎으로 뒤덮입니다. 상록수 중에는 지난 잎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새잎으로 서서히 바뀌는 나무도 있습니다. 저는 이야말로 배움의 장에 어울리는 새단장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낙엽수처럼 겨울이 오기 전에 오랜 잎이 먼저 지고 새로운 잎이 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새로운 잎이 돋는 것을 보고 오래된 잎이 조용히 지는 것이 대학의 배움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늘 새로워집니다. 하지만 옛 지식을 이어받아야만 새로운 지식이 더욱 깊어지고 빛나게 됩니다.

저는 대학은 정글, 즉 열대우림 같은 것이라 말해 왔습니다. 정글도 상록 활엽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기에는 붉은 새잎이 한꺼번에 돋아나 마치 일본의 가을 단풍처럼 숲이 물듭니다. 그곳에는 제가 오랫동안 조사해 온 고릴라를 비롯해 다종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생물들은 정글에 사는 다른 생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서로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생태계가 유지됩니다. 그런 모습이 대학과 비슷합니다. 대학도 다종다양한 학문과 이를 책임지는 연구자가 있고 분야를 넘어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글에서 늘 새로운 만남과 변화가 생겨나듯 대학에서도 새로운 발견과 사상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정글에서는 생물이 외부 세계로 드나들며 물질과 에너지를 순환시키듯 대학도 외부 사회와 다양하게 교류하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교류와 순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저는 5년 전에 WINDOW 구상을 교토대학의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대학에 많은 WINDOW, 즉 창을 내어 바람이 잘 통하게 해서 외부에서 대학에는 없는 다양한 지식을 불러들임과 동시에 많은 재능 있는 학생들의 등을 밀어 세계와 사회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교토는 늘 새로운 것과 옛 것이 만나는 곳입니다. ‘천년 고도’라 불리며 헤이안 천도로부터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거리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토 사람들 삶 속에, 옷차림과 먹거리, 말과 몸가짐에 깊은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교토에 살며 교토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그런 전통 문화의 숨결과 긍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혁신적인 기술과 예술을 낳아 온 도시이기도 합니다. 교토에 본사를 둔 많은 기업들은 전통적인 지혜와 최첨단 과학기술을 융합시켜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왔습니다. 그 중에는 교토대학 학생 시절에 벤처 기업을 창업해 세계로 진출한 회사도 있습니다. 지금 교토대학에서는 대학발 벤처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지식과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성해 기존에 없었던 가치관을 지닌 사회 시스템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어지는 지혜와 기술이 축적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교토는 혁신을 일으키려는 벤처가 자라나기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토대학은 1897년 창립된 이래 '자중자경(自重自敬)' 정신을 토대로 자유로운 학풍을 구축하고 창의적인 학문의 세계를 열어 왔습니다.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에 기여하는 것도 교토대학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지금 세계는 20세기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동서 냉전이 종언을 맞으며 해소될 줄 알았던 세계의 대립 구도는 민족 간, 종교 간 알력이 표면화되면서 더욱 복잡하고 가혹해졌습니다. 지구 환경 악화는 가속화되고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재해와 치사성 높은 감염증이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며 금융 위기는 국가 재정과 개인의 생활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풍파 속에서 교토대학이 창립 정신에 입각해서 어떻게 이 국가와 사회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교토대학은 자학자습(自学自習) 정신을 기조로 하며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학풍의 학문 중심지로 남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금까지 살아 오며 몸에 밴 상식을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나와는 다른 고장에서 온 동료나 외국에서 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쉬는 날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 내가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이문화에 몸을 담그고 맛보는 것도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돌려 그 배경과 요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가 교토대학 학생이던 1970년대도 사회가 커다랗게 움직이려 하던 시대였습니다. 과학기술이 찬사를 받고 커다란 개발의 파도에 전 일본이 휩쓸리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공해로 인한 환경 오염과 건강 피해가 드러나면서 문명의 미래에 대해 커다란 의문이 부상했습니다. 그런 격동적인 세상과 대학에서의 현실을 초월한 깊고 넓은 배움 사이의 괴리에 고민이 생길 때 저는 자주 대학 근처 숲을 산책했습니다. 정문을 나서 요시다(吉田) 신사로부터 신뇨도(真如堂)나 구로다니(黒谷) 참배로, 그리고 긴카쿠지(銀閣寺)에서부터 철학의 길을 걸어 호넨인(法然院)이나 난젠지(南禅寺)로. 여유가 있으면 다이몬지산이나 만슈인(曼殊院), 시센도(詩仙堂), 히에이산으로, 아니면 서쪽으로 걸어서 시모가모 신사와 고쇼로. 만약 휴일이라면 침낭을 들고 기타야마를 오르고, 걷다 지쳐 저녁이 되면 그대로 강가에서 별을 보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 하면서 저는 몇 번인가 제 자신을 잃을 뻔했던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자연 속에 홀로 서 보면 매우 신기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저는 학생 시절에 읽었던 Henry David Thoreau의 책 ‘월든 – 숲속의 생활’에서 배웠습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전에 미합중국에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 많이 남아 있었던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28세였던 Thoreau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로부터 1마일 반 정도 떨어진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혼자 지냈던 나날에 대해 쓴 책입니다. 하버드 대학(당시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후 독신으로 교사, 측량사, 정원사, 목공 등 직업을 전전하면서 아무리 해도 사회에서 정해져 있는 직업에 정착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혼자 힘으로 살아가며 독서와 사색의 나날을 보내려 했습니다. 그는 그런 삶을 스스로가 ‘작은 새들 옆 새장에 들어간 듯하다’고 묘사했으며 월든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대지는 이어져 있는 땅이 아니라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숲으로 향한 이유는 내가 신중하게 살아가길 원해서 인생의 근본적인 사실만을 마주하고 그것이 가르쳐 주려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배울 수는 없을지 알기를 원하며, 내가 이윽고 죽게 되었을 때 내가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 없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그도 첫 여름은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이렇게 활짝 피어난 꽃과 같은 순간을 손이나 머리를 쓰는 일에 바치는 것은 아무래도 아까워서 못 할 일이었다. 나는 나의 인생에 넓은 여백을 두는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정원을 만들지 않았으며 가축도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자연 속에 몸을 던져 자연에 녹아들려 했던 것입니다. 그가 가장 즐거워한 시간은 봄과 가을 오랫동안 비바람이 계속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봄소식을 Thoreau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봄의 첫 참새 ! 한 해가 전보다 더 젊은 희망으로 시작된다 ! 반쯤 드러난 젖은 들판 위에 희미하게 들려 오는 파랑새 , 멧종다리 , 개똥지빠귀의 은방울같은 지저귐은 겨울의 마지막 눈송이가 굴러 떨어지는 듯하다 ! 그럴 때 역사는 , 연대학은 , 전통은 , 그리고 글로 쓰여진 모든 계시는 과연 무엇일까 . 시냇물은 봄의 찬가와 환희를 노래한다 . 목초지 위를 낮게 나는 개구리매는 첫 눈을 뜬 미끌미끌한 생명체를 이미 찾아 헤매고 있다 .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는 모든 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얼음은 연못에서 녹기를 서두른다 . 풀은 언덕 경사면에서 봄의 불꽃처럼 타오른다 . ( 중략 ) 마치 돌아온 태양에게 인사하려고 대지가 땅 속 열을 뿜어냈다는 듯이 . 그 불꽃의 색깔은 노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다 . 영원한 청춘의 상징인 풀잎은 길다란 초록 리본처럼 흙에서 여름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 잠시 서리 때문에 주춤했다가도 곧 다시 밀어내고 작년의 마른 풀 이삭을 아래의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 올린다 . 그것은 지면에서 물의 흐름이 스며 나오는 것처럼 쑥쑥 자라난다 . 이는 거의 물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 왜냐면 무성하게 우거지는 6 월의 나날에 물의 흐름이 마르면 풀잎이 그 물길이 되어 다가올 새해에 가축들은 이 상록의 흐름으로 목을 축이고 풀베기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그들의 겨울 사료를 거기에서 길어올리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생명도 뿌리 근처까지만 죽을 뿐으로 ,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 녹색 잎을 내밀게 된다 .”

2년 후에 Thoreau는 숲을 떠납니다. 그 때 그는 숲에서 배운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 꿈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고, 그래서 스스로 상상한 생활을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그는 평소에는 예상도 할 수 없었던 성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언가를 내려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게 될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더욱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위와 그 안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또는 옛 법칙이 확대되어 더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그는 더 높은 질서에게 존재를 인정받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가 생활을 단순화함에 따라 우주 법칙은 덜 복잡해 보이고, 고독은 고독이 아니게 되며, 가난은 가난이 아니게 되고, 유약함은 유약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공중누각을 지었다 해도 당신의 일이 실패하리라는 법은 없다. 누각이 있어야 할 곳은 원래 그곳이었다. 이제 토대를 그 밑에 끼워 넣으면 된다.”

얼마나 자신 넘치는 마음으로 그가 숲을 뒤로 했는지. 그가 살았던 시대는 기차가 대륙을 달리고 증기선이 대양을 건너며 전신(電信)을 통해 여러 도시 사람들이 이어지던 시대였습니다.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전 세계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과학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여명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Thoreau는 그 후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작가로 살아가며 내전과 노예제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하다 45세가 되기 직전에 병으로 쓰러져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로 미국이 자본주의 경제를 기반으로 한 물질 문명의 한 가운데를 향해 커다랗게 뱃머리를 돌렸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19세기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그 내용만 다를 뿐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극적으로 바뀌는 문명 전환기라는 점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화상 진단하는 의료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일손이 부족한 부분을 정보기술과 로보틱스로 보완해 스마트 농업이나 스마트 어업을 창출합니다. 정확한 수요 예측과 기상 예측을 토대로 다양한 에너지원를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합니다. 더 나아가서 어디에서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가정이나 사무실의 많은 작업들을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는 스마트 시티 구상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단 ICT가 꼭 올바른 곳에만 쓰이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유포해 사람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개인정보를 훔쳐내 나쁜 일에 이용하는 사례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가짜 뉴스가 때로는 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각국은 기밀정보 유지를 위해 기를 쓰고 정보보안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주공학, 해양탐사 기술, 로보틱스 등도 군사 목적으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은 재해 방지 등 인간 복지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침략을 위해서도 이용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정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까요? 그런 물음이 지금 부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인간이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보고 문명이나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혜택의 의미를 되물으며 행복하고 지속적인 미래를 구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이 닿지 않은 자연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문명의 발자취와 함께 일본인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 준 자연이 지금도 변함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그곳에 걸음해서 자연과 사람이 자아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껴봐 주십시오. 물론 Thoreau의 시대와는 달리 스마트폰이 있는 현대는 친구나 도시 문명과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정보통신 기기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지내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이전에 저는 아프리카에서 고릴라 조사를 할 때 라디오 외에 아무런 통신기기 없이 깊은 숲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 나날들은 그때까지 혜택을 누려 온 네트워크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정글의 식물과 동물들을 매우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여러가지 일들이 숲 속에서 일어나는데, 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어서 함께 숲의 드라마를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 속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러 생물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는 동양 문화의 밑바탕에는 ‘형태 없는 것의 형태를 보고, 소리 없는 것의 소리를 듣는 면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면은 일본인의 정서에 스며들어 일본화나 일본 전통 음악 같은 예술에 나타납니다. 셋슈(雪舟)나 우에무라 쇼엔(上村松園)의 여백을 살린 그림, 성명(불교 음악의 일종)이나 아악 등의 고요한 시간의 흐름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경이 몇 겹에 걸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심경은 실제로 깊은 자연 속에 발을 들여놓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속에 홀로 섰을 때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셀 수 없는 생물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살아있다는 것이 몹시도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이는 일본이라는 숲의 문화 속에서 자라나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었던 세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WINDOW 구상의 첫 글자 W은 WILD and WISE, N은 NATURAL and NOBLE입니다. 모쪼록 교토의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담그셔서 야생의 마음과 고귀한 품격을 키워내시길 바랍니다. 교토대학은 학부생을 대상으로 '오모로 챌린지'(오모로: '재미있는'이라는 의미의 간사이 지방 표현)라는 체험형 해외 활동 지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해외 대학에 설치된 기존 유학 코스가 아니라 학생 본인이 직접 기획하는 ‘재미있는 해외 체험’을 연간 30건, 최대 30만 엔까지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매년 야심 넘치는 학생이 나만의 계획을 세우고 직접 모든 것을 준비해 실로 독특한 여행을 경험하고 돌아옵니다. 여러분도 꼭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현대는 국제화의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미래에 활약하게 될 무대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크게 벗어나 전 세계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자연 자원이 많지 않은 일본은 첨단 과학기술로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기를 개발해 잇따라 이를 세계에 전파해 왔습니다. 해외로 진출하는 일본 기업이나 해외에서 일하는 일본인은 최근에도 증가세에 있으며, 일본 기업이나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수도 증가 일로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흐름을 타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은 물론 해외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역사를 잘 알고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화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광범위한 교양과, 상식에 의심을 품고 진리를 탐구하는 기개를 갖춰야 합니다. 이과 계열 학문을 공부하고 기술 분야로 진출했더라도 국제적인 협상에서는 다양한 인문사회 분야 지식이 필요해지며, 문과 계열 일터에서도 이과 계열 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많이 발생합니다. 세계와 일본의 역사를 잘 알고 전문가 수준의 질 높은 지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교토대학은 전교 교수들의 협력을 얻어 질 높은 기초 및 교양 교육 실천 시스템을 구축해 왔습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계층성을 고려해서 클래스 배당 과목과 코스 트리 등을 고안해 교수와의 대화 및 실천을 중시한 소인원 세미나 등을 배치했습니다. 외국인 교수도 대폭으로 늘려 학부 강의와 실습도 영어로 실시하는 과목을 포함시켰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계에서 실천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5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과 2개 WISE Program(Doctoral Program for World-leading Innovative & Smart Education, 문부과학성 선정)을 가동 중입니다. 첨단적 학술 허브로 고등연구원을 설치해 교토대학의 학문을 통해 전 세계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학생의 창업가 정신을 함양하는 ‘학생 챌린지 콘테스트’와 방금 말씀드렸던 ‘오모로 챌린지’ 외에도 다양한 유학 코스를 제공합니다. 외국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배움의 장에서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역량을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대학에 등교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습의 기회를 마련하게 됩니다. 과외 활동도 대폭 제한되어 자유롭지 못한 나날들을 보내시게 되겠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즐거운 대학 생활이 눈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도 여러 번 감염증의 위협에 시달려 왔으며 그 때마다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위기도 전 세계 사람들이 협력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연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말로 여러분이 활약하게 될 무대임에 틀림 없습니다. 모쪼록 그때까지 건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며 자학자습에 매진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이라는 이상적인 대화의 장에서 많은 학우들과 교류하며 미지의 세계를 즐기고 만끽하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0년 4월 7일
교토대학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

(“ ”는 Thoreau 저서 간키 사부로(神吉三郎) 번역 ‘숲의 생활’(이와나미쇼텐, 1979년)에서 인용해 한국어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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