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졸업식 축사 (2015년3월24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을 졸업하시는 2,803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마쓰모토 히로시(松本紘)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식을 맞을 때까지 여러모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토대학이 1897년 창립되어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18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199,782명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부디 여러분이 입학할 당시를 떠올려봐 주십시오.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힘든 입시 전쟁을 이겨내 입학하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계셨나요? 오늘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혹시 그 꿈이 크게 바뀌었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시려는 길은 그 당시 꿈과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지금부터 꼭 45년 전인 1970년에 저도 교토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 때 꿈은 막연히 이 넓은 우주의 구조를 파헤쳐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학생 운동이 심하던 시절이라 도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저도 그 영항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본의 정치가 큰 전환점에 접어든 시기에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한가롭게 입시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 시민 집회나 거리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스스로 거부한 동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눈 앞에 있는 세상보다 더 크고 심오한 세상을 알고 싶었습니다. 정치에 휘둘리는 현실 세상에 머무르기보다 미래에 조우하게 될 세상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내 머리 속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이를 실현시켜 줄 학문의 중심지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꿈은 교토대학 재학 중에 크게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꿈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창립 이래 교토대학은 대화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로운 학풍이라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학한 해는 아직 학생들이 캠퍼스 구내를 점거하고 있어서 입학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업 거부나 휴강도 많았지만 교원들과 학생들은 지금보다 더 자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학생들도 자율 토론학습을 개최해 스스로 주제를 정해 필요한 문헌을 가져와서는 토의하곤 했습니다. 학생들은 분야의 장벽을 초월해 함께 모여 때로는 캠퍼스를 벗어나 요시다산이나 가모가와, 마루야마공원이나 술집에서 토론의 장을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돌이켜 보게 되고 많은 재미있는 발상이나 새로운 개념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 교토대학 종합박물관의 전신인 진열관도 2차대전 전에는 교관과 학생, 교관끼리의 자유로운 교류의 장이었습니다. 작년에 발간된 ‘학문의 주춧돌을 이어받다’라는 제목의 교토대학 종합박물관 책자에는 이 진열관의 모습에 대해 “신발장이 있던 지하실에는 기모노에 게타(일본 나막신) 차림으로 찾아온 교관들이 반드시 들러 거기서 학문적인 문제들부터 가십성 수다까지 담론풍발(談論風発)하였으며 학생들도 함께 참여해 떠들썩하고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라는 묘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담론풍발이란 대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요?

메이지 시대에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을 일본에 소개한 자유민권운동가 나카에 조민(中江兆民)이 1887년에 펴낸 ‘삼취인경론문답(三酔人経綸問答)’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논객 3명이 등장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일본의 국제 전략을 논합니다. 한 명은 양학신사라 불리는 서양 근대사상을 옹호하는 논객이며 또 한 명은 가스리(붓으로 스친 듯한 무늬가 있는 직물 천) 기모노를 입은 호걸군이라 불리는 사회운동가. 그리고 주당인 난카이(南海)선생입니다. 양학신사는 루소나 된 듯 자유, 평등, 박애 3원칙 확립을 외치며 군비 철폐를 주장합니다. 인간은 사해동포이며 만일 강대국에 침략당하더라도 도의에 입각해 호소하면 다른 열강들이 그냥 내버려둘 리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니, 그건 학자의 서재에서나 통할 논리라고 호걸군은 반론합니다. 현실 세계는 약육강식, 국가 간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침략을 감수하지 말고 군비를 정비해 대륙의 대국들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난카이선생은 그 둘 사이에 끼어듭니다. 두 논리 모두 극단적이며 탁상공론과 과거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적으로는 입헌 제도를 구축해 인민의 권리를 지키고 국제적으로는 각국 민주 세력들과 연계를 도모해야 하며 무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설파합니다. 양학신사도 호걸군도 난카이선생의 너무나도 평범한 논리에 어이없어하지만 난카이선생은 국가 백년대계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기발한 발상 따위는 있을 수 없다며 완고하게 버팁니다. 이 세 취한 논객은 각각 나카에 조민의 분신으로 보이는데 나카에 조민은 3인 문답의 형식을 통해 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토대학에도 이런 문답 형식을 도입해 논리를 펼친 선구자가 있습니다. 영장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설한 이마니시 긴지(今西錦司)입니다. 1964년에 이학부에 생긴 인류학 교실 초대 교수시며 저는 6대째 교수로 가르쳤습니다. 이마니시 교수님이 1952년에 쓰신 저서에 ‘인간성의 진화’라는 논고가 있습니다. 이 글은 진화론자와 인간, 원숭이, 벌이 등장해 각각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능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문화보다 더 확장된 ‘컬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컬처가 있는지, 각각의 입장에서 논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되던 현상을 동물에게도 찾을 수 있는 현상으로 바꿔 놓고 보면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 밝혀 나갑니다. 예를 들면 본능에 따라 생활하는 동물은 그 행동의 목적을 모르지만 컬처에 따라 생활하는 인간은 하나하나 그 행동의 목적을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물과 인간은 다르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진화론자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원숭이는 “침팬지는 천장에 매달린 바나나를 따기 위해 상자를 쌓아올리니 목적을 알고 행동한다.”라고 반론합니다. 그러자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하며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다.”라고 되받아칩니다. 벌은 “사냥벌이 먹이를 구덩이에 집어넣고 그 위에 알을 낳는 것은 유충과 그 먹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예상하고 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단 이는 본능이지 컬처라고는 말할 수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정말 재미있어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되는 토론으로 얼마나 우리가 멋대로 인간의 행동을 특별하게 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관점에 입각해서 활발하게 토론하는 것이 제가 소속되어 있었던 인류학 교실의 전통이었으며 이 전통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도 이런 자유롭고 활달한 토론을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 논의와 학우들은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한 적 없는 미지의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도전정신입니다. 그 정신에 입각해 현저히 활약한 학생을 기리기 위한 상이 총장상입니다. 금년도에는 11명의 학생이 총장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중에는 올해 공학부를 졸업하는 다나카 에이스케(田中英祐) 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나카 군은 학업에 힘쓰고 졸업 연구에 열중하는 와중에도 야구부 대표 투수로 교토대학 승리에 기여하고 롯데 구단의 지명을 받아 프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교토대 역사상 첫 프로야구 선수 배출입니다. 틀림없이 기존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는 없는 능력을 발휘하며 활약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다나카 군뿐 아니라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도 다양한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이미 그것을 발휘해 활약 중인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 교토대학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내보이고 시험할 기회가 앞으로 틀림없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판단을 내려서 직면한 과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의견만 들어서는 결국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지구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달성해야 하는 커다란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현대는 이 조화가 무너지고 종교 간, 민족 간 대립이 격화되어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공존이 위기에 처해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 주제를 거스르는 사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토론 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과제에 맞서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여주실 자세와 행동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분 뒤를 따르게 될 재학생들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은 크게 갈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 길이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자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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