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학위 수여식 축사(2023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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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湊総長

 교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실 2,193명 여러분, 석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169명 여러분, 법무박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116명 여러분, 박사 학위를 받으실 541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학위 취득자 여러분 중에는 유학생 511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한 학위는 이로써 석사 학위 90,441개, 석사 학위(전문직) 2,525개, 법무박사 학위(전문직) 2,765개, 박사 학위 47,974개가 되었습니다. 참석한 이사, 관계 부국장,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 모두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사 또는 석사라는 학위 제도는 고분도에서 출판된 ‘역사학 사전 제14권 종교와 학문’에 의하면 13세기부터 14세기 유럽에서 고등교육기관과 연구기관 차원의 대학(university) 성립 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또 원래는 다양한 개인 시험을 거쳐 이들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인정하는 ‘교수 자격’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후 19세기에 독일에서 학술(Wissenschaft)이라는 개념이 생겨남과 동시에 학위는 자격이라기보다는 특정 학문 영역에서의 지식 습득이나 연구 성과를 기리는 학술 칭호로 세계적으로 확산된 듯합니다. 일본에서도 1911년, 창립한 지 불과 14년 지난 교토제국대학이 당시 미국에 있던 약관 34세의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에게 의학박사를 수여했습니다. 노구치 히데요는 도쿄의 의술 개업 예비교였던 도쿄의학전문학교 사이세이학사(済生学舎)를 졸업하고 약관 20세에 의사 면허를 취득, 24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 의학부의 Simon Flexner 교수 아래에서 조수로 뱀독을 연구했습니다. 본교와의 직접적인 접점은 딱히 없었던 듯한데, 그는 그 성과 논문을 교토제국대학 의과대학에 제출해 의학박사를 수여받았습니다. 당시 관보에는 ‘위 논문을 제출하고 학위를 청구해, 교토제국대학 교토의과대학 교수회에서 그 대학원에 들어가 정규 시험을 치른 자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지닌 것으로 인정했으며, 따라서 1898년 칙령 제344호 학위령 제2조에 의해 여기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라고 문부대신의 학위 수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 노구치 히데요의 뱀독에 대한 면역 반응에 관한 학위 논문은 현재도 본교 의학부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는데, 저는 아주 수준 높은 논문이라 생각합니다.

 현재와 같은 ‘학위 수여 교육 과정 차원의 대학원’이라는 교육 제도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시작되어 이후 급속히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 미국이 세계의 학술과 연구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최첨단 연구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과 유럽에는 경쟁력 높은 대학원에서 전문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카데미아뿐 아니라 정치나 경제 등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중심적, 지도적 역할을 맡아 온 역사가 있었던 바, 학위가 파워 엘리트의 지적인 필요 조건이라 여겨져 온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에 하버드대학의 Michael Sandel 교수님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미국에서는 이런 고학력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지나친 능력주의(Meritocracy)가 대다수 시민에 대한 공감의 상실, 공공익에 대한 기여라는 사명감의 희석을 초래하고 사회적 분단의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충만해지는 것은 공동선(Common good)에 기여하고 그 기여로부터 우리 동료 시민의 존경을 얻을 때이며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즉 현대의 파워 엘리트는 이런 겸허한 인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본의 학위 소지자는 아직 이런 파워 엘리트로서의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반론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Sandel 교수의 ‘우리가 가장 충만해지는 것은 공동선에 대한 기여로부터 우리 동료 시민의 존경을 얻을 때다’라는 지적 자체는 틀림없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지구의 기후 변화에 의한 환경 변화와 대규모 자연 재해, 신종 감염병 팬데믹, 인구와 식량 문제, 빈곤과 사회 격차 심화 등 많은 글로벌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성 높은 현상들로, 개별 학술이나 과학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1990년대에 옥스퍼드대학의 과학철학자 Jerome Ravetz는 ‘과학으로 물어볼 수는 있지만 아직 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지적하고 이를 Post-Normal Science 라 표현했습니다. Normal Science는 인과율이 명확한 영역에서의 기존 과학이며, 지금까지 인간 생활의 향상과 사회 활동에서의 의사 결정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그런 한편 Post-Normal Science 영역에서는 사실이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으며 또한 의사 결정에 아주 많은 이해(Stakes)가 관여되어 있어서 개별 Normal Science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Ravetz는 이 불확실성은 반드시 기존 빅데이터나 초고속 연산에 기초한 인공지능(AI)에 의해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안전과 건강과 환경 그리고 윤리의 과학(The sciences of safety, health, and environment, plus ethics)’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제창합니다. 이번에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팬데믹은 바로 이 Post-Normal Science 영역에 있는 것으로, 이렇게 복잡하고 중요한 사회적 과제의 대처나 의사 결정에 있어서 학술이나 과학이 전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관여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중요한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 ‘융복합지식(総合知)’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확한 뜻은 반드시 명확하게 합의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 배경에는 복잡하게 뒤얽힌 글로벌한 문제, 그야말로 Post-Normal Science 영역에 있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일 과학이나 기술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음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융복합지식’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은 학술과 과학의 다양성(Diversity)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다양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개인,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전체 차원에서도 여러 수준에서 지적되어 왔는데, 자연계에서의 생물의 유지와 진화라는 점에서도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생물은 특정한 환경에서 그에 완전히 최적화된다고만은 할 수 없고, 그 이른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도 종종 평상시 환경에서 아주 유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성질을 일부러 남겨 놓는 전략을 취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Bet hedging(양쪽 걸치기 전략)”이라 불립니다. 이는 만일 환경이 격변해 그 생물의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전멸하지 않고 그 종의 생존이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놓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여겨집니다.

 예를 들면 개체의 유전자에는 항상 일정 확률로 변이가 일어나는데, 변이한 대립유전자가 이를테면 원래 유전자에 비해 평상시 환경에서 덜 유리하더라도 어지간한 불편이 없는 한 집단 속에서 유지됩니다. 이는 변이한 대립유전자가 격변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 다양성이 많을수록 그 생물 전체의 생존 유지 가능성이 높아지고 나아가 새로운 진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변이한 대립유전자가 집단에서 소실되지 않고 다가올 환경 변화 때까지 확실하게 보존 유지되는 상황입니다. 학술과 과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으며 예측이 어려운 미래를 향해 우리가 그 존재 가치를 확실하게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학술과 과학의 다양성 유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융복합지식’도, 혹은 본교가 창설 이래 가장 중요시해 온 ’연구의 독창성’도, 그 전제 조건에는 다양성의 유지가 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 학술 전문 영역에서 전문적 학식과 과학적 리터러시를 배양해 온 여러분에게 세상은 더 나아가 글로벌 규모의 복잡한 사회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부감하는 힘도 기대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사회 곳곳을 담당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오늘 이 학위 수여는 도달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그 앞에는 여러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각각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지금까지 수련을 통해 배양해 온 역량을 유감 없이 발휘해 결국 ’동료 시민’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인정받을 만한 공헌을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응원하며, 축하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