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졸업식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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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湊総長

   교토대학 여러 학부에서 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오늘 떳떳이 졸업식을 맞은 2,950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창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 및 재학생을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하는 날까지 여러분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신 가족 및 친척 여러분도 정녕 기쁘시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22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20,230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대학 생활의 거의 절반 정도 기간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팬데믹 사태라는 전에 없던 재난 속에서 혹독한 제약을 받으며 지내야만 하는,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경험을 하셨습니다. 캠퍼스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고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으며 클럽이나 동아리 활동은 물론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자유롭게 즐길 수 없는, 정말 힘든 나날이었을 줄로 압니다. 특히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하시던 여러분 대부분은 매우 불안한 마음이 드셨을 겁니다. 대학 차원에서도 이 예기치 못한 사태 속에서 여러분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으며, 때로는 상당히 어려운 부탁을 드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정말 잘 견디고 이겨내어 오늘 이렇게 졸업을 맞게 되었습니다. 교직원 일동 모두 이에 경의를 표하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어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대학 강의는 많은 부분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지만 여러분은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면 강의보다 오히려 효과적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는 대학 강의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친구나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직접 만나서 대화하거나 논의하는 것보다 SNS 등의 수단을 활용하는 비율이 한층 커졌을 것입니다. 인간은 새로운 상황과 환경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존재여서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점차 당연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한편 사람과 사람 간의 직접적인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제약을 받으면서 우리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실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시각과 청각, 즉 카메라와 마이크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과 의식을 이용해 무의식 중에 그 자리의 모든 정보를 감지하고 이를 종합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합니다. 이런 신체적 실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sympathy, 즉 공감과 empathy, 타자의 사고와 감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생겨나는 거라 생각합니다.

   Michael Polanyi라는 헝가리 출신 경제인류학자는 ‘암묵적 영역’이라는 저서에서 사람의 지식은 종종 명확하게는 언어화되지 않는 암묵적 이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는 단적으로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이라 표현되며, 이후 이 개념은 사람의 인지나 이해와 인공지능(이른바 AI)의 학습 양식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폴라니의 역설(Polanyi's paradox)’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의 학습이나 지식 획득에는 발화나 문자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표현된 정보를 넘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지만은 않는 감정이나 상념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즉 신체적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여러분은 명시적인 지식과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암시적 정보는 예를 들면 공감이나 감정 이입의 형태로 의식 아래 오래 남아서 여러분의 감성과 사고를 키워내고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의식 위로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이란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학습과 성장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타자와의 직접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제한받는 힘든 경험을 해 온 여러분은 다시금 암묵적 지식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섬세하고 풍부한 관계성을 소중히 여겨주시길 강력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졸업하게 된 2022년이라는 해는 교토대학에게도 창립 125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졸업하실 교토대학은 어떤 역사를 지닌 대학인지 이 기회에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18년이 지난 1886년, 도쿄에 일본 최초의 관립 대학이 설립되어 제국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이는 일본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국가의 관료와 기술자 등 인재를 육성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급속도로 서구 학술 문화 도입이 진전됨에 따라 일본에서도 독자적으로 학술 연구와 고등 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제2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의 문부대신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 등의 노력에 의해 1897년 칙령을 통해 이곳에 교토제국대학이 설치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원래 있던 제국대학은 도쿄제국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후에 ‘마지막 원로’로 일본의 근대화에 몸바친 사이온지 긴모치는 젊은 시절 소르본대학에 유학했던 국제파 교양인으로 ‘정치의 중심에서 떨어진 교토 땅에 자유롭고 신선한, 그리고 정말로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학부 차원의 대학을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토제국대학은 이공과대학, 법과대학, 의과대학, 문과대학 등 4개 분과대학으로 이루어진 종합대학으로 설치되었습니다. 그 후 1914년에 이공과대학이 이과대학과 공과대학으로 분리되고, 1919년에는 학부제를 규정한 대학령이 시행되면서 이학부와 공학부로, 또 법과대학은 법학부와 경제학부로 나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는 농학부, 교육학부, 약학부, 종합인간학부를 포함해 10개 학부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초대 총장인 기노시타 히로지(木下広次)는 제1회 입학선서식 인사말에서 ‘본 대학은 제국대학의 지교가 아니며, 미니어처판도 아닌,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대학이다. (중략) 학생은 자중자경(自重自敬)을 으뜸으로 여기며, 자주독립을 기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설립 취지에 의거해 교토대학은 이미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추진 중이던 ‘연구 속에서 학생을 교육한다’는 Humboldt 이념에 기반해 일본 최초의 연구 대학으로 오늘까지 125년 역사를 새겨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오랜 역사적 전통과 이어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교토대학 학사 과정을 수료하신 여러분은 앞으로 더욱 고도의 연구 세계로, 혹은 실제 사회로 드디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새로운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작년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100년 이상 전에 캐나다의 Lucy Maud Montgomery 여사가 집필한 소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 앤 셜리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I love bended roads. You never know what may be around the next bend in the roads."
나는 길모퉁이가 있는 길을 참 좋아한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대체 어떤 풍경일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되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는 뜻일 겁니다. 이 대하 소설 밑바탕에 일관되게 깔려 있는 것은 인생과 자연에 대한 자유롭고 끝없는 호기심과 타자에 대한 무한한 감정 이입, 그리고 한없이 밝은 낙관주의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인생에는 많은 길모퉁이가 등장하겠지만 지름길이나 가장 가까운 경로로만 걸을 필요는 없으며, 좀 돌아가거나 먼 길을 택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전에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애플 창업자 중 하나인 Steve Job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또 연설의 마지막을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유명한 문구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foolish’라는 표현에는 ‘clever’할 필요는 없다, 멀리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되도록 젊을 때 해외 생활을 경험해 보시길 강력하게 권해 드리고자 합니다. 저 자신도 20대 후반을 미국 연구실에서 지내면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같은 세대 젊은이들과 절차탁마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경험이 그때부터 4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 인생의 행보와 사고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앞으로의 인생의 길모퉁이 저편에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몇 번이나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때로는 예상조차 못 했던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이윽고 여러분의 인생을 빚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이 더 깊이 연구를 계속하는 길이든 실제 사회에서의 새로운 생활이든, 저는 여러분이 건전한 비판적 정신, 타자에 대한 섬세한 감성과 감정 이입, 그리고 자유롭고 한없이 밝은 낙관주의를 겸비한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길 진심으로 기대하며 제 축사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