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학위 수여식 축사 (2021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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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湊総長

  교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실 2,184명 여러분, 석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159명 여러분, 법무박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128명 여러분, 박사 학위를 받으실 585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학위 취득자 여러분 중에는 유학생 487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한 학위는 이로써 석사 학위 85,849개, 석사 학위(전문직) 2,175개, 법무박사 학위(전문직) 2,519개, 박사 학위 46,427개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야마기와(山極) 전 총장님, 참석한 이사, 관계 부국장,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 모두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히 여러분은 작년부터 코로나 상황 속에 연구실에서의 학술 연구 활동이 커다란 제약을 받는 가운데 학위 논문을 집필할 수밖에 없어 정말 고생하셨을 줄 압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학위 연구를 관철해 오늘을 맞이하게 되신 데 대해 커다란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정식으로 교토대학 학위 소지자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계속해서 아카데미아 세계에서, 또는 새로이 실제 사회에서 문자 그대로 핵심 인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위 수여는 도달점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박사 학위는 PhD라 불립니다. PhD는 라틴어 Philosophiae Doctor(필로소피아이 독토르)의 줄임말로, 원래 전통적 4개 학부 중 신학, 법학, 의학 등 실학문을 제외한 철학부 학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는데, 그러다 영역에 관계 없이 진리 발견에 기여하는 학술이라면 모든 분야 박사 학위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PhD를 배출한 것은 19세기 중반 예일대인데, 당시에는 매우 드물고 칭호적 성격이 강해서 미국 전체적으로 연간 겨우 2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 과정으로서의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과정이 창설된 것은 19세기 후반 존스홉킨스대학이었습니다. 당시 사정은 니혼대학의 하다 세키오(羽田積男) 교수님이 미국 의학 교육에 혁명을 일으킨 Abraham Flexner의 ‘Universities: American, English, German’ 등을 토대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학은 주로 교양 교육, 리버럴 아츠(Liberal Arts)가 중심이었는데 새로운 대학원 과정은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더욱 고도의 전문 학술 연구를 가능케 하는 교육 과정을 기초 삼아 학위 수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특징은 펠로십이라 불리는 장학금 제도의 도입으로, 당시 대학원 등록금이 연간 80달러였다는데 펠로 학생에 대한 장학금은 연간 500달러여서 세계 각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원에 입학하고자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매년 학위 취득자가 일정한 인원 배출되게 되었고 그 중 많은 인원이 대학은 물론 정부기관이나 민간에서 요직을 맡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당시는 석사와 박사 학위가 병렬적이어서 현재처럼 전기와 후기 관계가 아니라 각 대학 관행에 따라 구분해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성공 사례에 따라 이 대학원 제도는 19세기 말까지 하버드대학, 콜롬비아대학, 시카고대학, 캘리포니아대학 등 미국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이윽고 미국 전국에서 매년 몇만 명씩 학위 취득자가 배출되기에 이릅니다. 20세기 이후 미국이 세계의 학술과 연구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배경에는 대학원 제도의 확립과 그곳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최첨단 과학 연구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학위는 1887년 발령된 학위령에 따라 수여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라는 의학자의 이름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1876년생으로 대학원은 물론 정식으로 대학을 졸업한 학력도 없지만, 1911년 35세 때 교토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를 수여받았습니다. 같은 해 관보에는 ‘문부대신이 교토제국대학 병리학 교실 추천을 받아 후쿠시마현 평민 노구치 히데요에게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취지가 그 자세한 논문 개요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1920년 학위령 개정 이전에는 학위 수여자가 문부대신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1911년은 뉴욕 록펠러 연구소에 있던 노구치가 ‘병원성 매독 스피로헤타 순수 배양에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은 해였습니다. 그 후 그는 황열병 등 당시 세계의 중요한 감염증 병원체에 대해 많은 화려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3번이나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후에 그 연구 발표 중 상당수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 밝혀져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으며, 노구치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연구하던 중 황열병으로 쓰러져 51세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앞서 말한 스피로헤타 순수 배양 연구도 현재는 꽤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토제국대학에 제출한 초기 연구 논문은 뱀독의 면역학적 특성에 관한 것으로 당시 면역학 수준에서는 매우 훌륭한 내용이었으며 이는 현재 본교 의학부 자료실에 남아 있습니다. 실은 저 자신도 본교 의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는 진학하지 않고 바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어쩌다 보니 포닥(박사 후 연구원)으로 고용되어 연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 첫 논문은 1979년 록펠러 연구소가 발행하는 저널에 발표되었는데, 같은 저널 1905년 4월 호에 나중에 교토제국대학이 인정한 학위의 근거가 된 뱀독에 관한 Hideyo Noguchi 논문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놀랐습니다. 이는 노구치가 29세 때 논문인데, 제 첫 논문도 거의 같은 나이에 간행된 셈이라 인연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일본에서 미국식 ‘학위 수여 교육 과정’ 차원의 대학원이 정식으로 제도화된 것은 2차대전 후 학교교육법 제정에 의해서였으며, 1953년 국립대학에 신(新)제 대학원이 설치되었습니다. 학위는 대학원에서의 특정 학술 영역 업적 및 학식에 기반한 심사를 받고 문부대신 승인 없이 대학이 이를 자기 책임으로 수여하는 제도가 수립된 겁니다. 따라서 이번에 여러분이 받으신 학위는 교토대학의 학위이며, 이에 전문 학술 영역을 괄호 안에 추가 기재하는 형태로 표기됩니다. 이는 미국도 동일합니다. 또 일본의 대학원생 및 학위 취득자는 서구 나라들에 비해 반드시 충분한 사회적 평가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으며, 특히 열악한 대학원생 장학금 제도와, 뒤처진 학위 취득자의 국가 기관이나 민간 기업 진출 등 문제가 지적받아 왔습니다. 최근 들어 겨우 일본 정부와 문부과학성도 대학원생 지원과 학위 취득자의 사회 진출에 대한 여러 대책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학위는 국제 표준을 완전히 충족시키며 세계적인 통용성도 보증되는 것으로, 학위 취득자가 아카데미아뿐 아니라 국가 기관이나 국내외 기업 등 널리 사회로 진출해 활약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발전과 세계 평화의 중요한 열쇠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일찍이 철학자 Immanuel Kant는 ‘사람은 철학을 배울 수 없다. 철학하는 것밖에 배울 수 없는 것이다.’라고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했습니다. ‘철학한다’는 것은 ‘이성의 재능을 눈 앞의 시행(시험 삼아 하는 것)을 통해 수련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는 철학자가 아니어서 이 말의 진의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철학’을 ‘과학’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만고불변의 보편적 과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를 배우고 체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분은 ‘과학하는’ 것을 통해 ‘이성의 재능을 눈 앞의 시행을 통해 수련하는’ 것을 실천적으로 배워 왔습니다. ‘이성의 시행’의 대상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직면하는 과제도 시시각각 변화하며 더한층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대학원 제도를 만든 존스홉킨스대학의 Gilman 학장 전기에는 박사란 ‘변화무쌍한 학위’(the protean PhD)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세계는 크게 변화해 왔으며, 이런 커다란 변화의 시대야말로 ‘지식으로서의 과학’보다는 ‘과학하는’ 것을 배워 오신, 즉 이성의 수련을 거듭해 오신 여러분과 같은 우수한 인재가 여러 영역에서 변화무쌍하게 활약할 것을 요구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핵심 인재로서 사회 곳곳을 담당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학위 수여는 도달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지금까지 배양해 온 수련의 힘을 유감 없이 발휘해 인류와 그 사회를 위해 기여하시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응원하며, 축하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