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신 석사 과정 2,383명, 전문직 학위 과정 313명, 박사(후기) 과정 955명 여러분, 입학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을 대표하여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드립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학문을 더욱 깊이 탐구하기 위해 교토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 혹은 박사 과정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교토대학에는 다양한 학술 영역의 부서가 설치되어 있으며, 18개의 대학원 연구과와 더불어 30개가 넘는 부설 연구소와 연구 센터가 여러분의 학업을 지원합니다. 또한 현대 사회의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실천적인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목표로 한 5개의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과 3개의 WISE Program (Doctoral Program for World-leading Innovative & Smart Education)도 운영 중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입학하게 될 대학원은 어떤 곳일까요? 이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자격을 갖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개개인의 주체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요건으로 한 고도의 전문 교육 과정입니다. 이러한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 과정’으로서의 대학원을 최초로 창설한 곳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교입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학금 제도가 있던 터라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좁은 문이었다고 합니다. 20세기 이후 이 대학원 과정은 순식간에 전미의 대학에 보급되었고, 이를 수료한 학위 취득자의 수도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그들은 best and brightest 엘리트로서 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관계나 지자체, 산업계, 언론, 교육계, 나아가 NGO나 싱크탱크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으며 미국의 눈부신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고 합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후 4년제 대학 진학률이 꾸준히 증가하여 이미 50%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진학률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익사단법인 과학기술국제교류센터의 보고(교육·과학기술 혁신의 현황)에 따르면 2020년도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대학원 진학자 수는 0.95명으로 프랑스의 5.44명, 영국 5.33명, 독일 3.88명, 미국 2.15명 등에 비해 매우 적어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박사 과정에서도 동일합니다. 인구의 저출산·고령화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국제적으로 볼 때 일본의 대학원 진학률이 낮은 것은 명백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일본 전체의 학위 소지자 수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다는 사실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세계가 급속한 기술 혁신과 세계화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학위 소지자 수의 정체, 나아가 감소 현상은 향후 일본의 사회경제적 성장과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 큰 우려 사항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대학은 물론, 정부 및 산업계를 비롯한 사회 전체 차원에서 대학원 진학자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시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본교에서는 대학원교육지원기구 주도 하에 장학금 등의 생활 지원에 더해, 다양화되는 사회적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전이 가능한 기술(transferable skills) 습득을 위한 다수의 교육 코스와 다양한 인턴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부과학성에서는 최근 지급형 장학금을 대폭 확충하기 시작했고 산업계에서도 다양한 학위 취득자 우대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그들이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환경 정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최근의 활동은 모두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학위 취득자에 대한 사회의 큰 기대를 나타내는 것이며, 여러분은 이러한 배경 아래 학위 취득을 목표로 새롭게 대학원에서의 교육·연구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대학에서의 학술·과학 연구가 어떤 형태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는 분명 중요한 질문이지만 그 방식은 학술 영역에 따라 지극히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라는 말이 쓰입니다. 이 용어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에서 공공 정책으로서 필요한 학술·과학 연구 자금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과학 고문이었던 바네버 부시(Vannevar Bush)는 1945년, 공적 연구 자금은 순수하게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연구, 즉 기초 연구에 투입돼야 하며 기업 등이 제품 개발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응용 연구에 투입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기초 연구는 연구자의 자발적인 흥미나 탐구심에 기반한 연구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며, 특정 성과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 연구나 인간의 치료 및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임상 연구 등과 대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세계에서 학술 연구를 이처럼 기능별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저서 『총·균·쇠』에서 흥미로운 글을 썼습니다.
“실제 발명의 대부분은 인간의 호기심의 산물이며, 무언가 특정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탄생한 것은 아니다. 발명을 어떻게 응용할지는 발명이 이루어진 후에야 생각해 낸 것이다. … 즉, 대부분의 경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인 셈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처럼 용도가 분명해 보이는 발명도 실용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니콜라우스 오토(Nikolaus August Otto)가 내연기관을 발명한 것은 1866년인데 이를 개량한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가 오토바이를 만든 것은 1885년, 나아가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트럭을 만든 것은 1896년입니다. 즉 ‘발명이 필요를 낳는다’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30년이나 걸렸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AI 기술의 발전이 실제로 어떤 진정한 사회적 가치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부분도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 분야의 획기적인 발견이 유용한 사회적 가치로 결실을 맺는 과정은 결코 평탄한 직선 길이 아니며, 많은 연구자들의 말 그대로 창조적인 연구가 축적되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연구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연구의 주체성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일본인은 동조성이 높은 국민이라고 하는데 학술 연구의 세계에서 동조성은 결코 미덕이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이 저서 『Humankind: 희망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인 듀크 대학교의 행동경제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언뜻 보기에는 전문적이고 의미심장해 보이는 정의에 대해 엉터리 강의를 했습니다. 교수가 말하는 ‘변증법적 불가해설’이나 ‘신탈구축적 이성주의’ 등의 용어와 설명은 모두 컴퓨터가 무작위로 생성한 전혀 의미가 없는 문장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엉뚱한 내용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고, 끝까지 아무도 웃지 않았으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태도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친구들이 열심히 듣고 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버립니다. 이 실험과 같은 동조는 그리 해롭지 않을 수 있으나 이것이 정치나 경제에서 발생할 경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브레흐만은 “종종 신뢰는 누군가가 감히 흐름에 역행할 때 시작된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아마도 학술 연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획기적인 발견은 종종 널리 받아들여진 사고방식이나 개념을 굳이 의심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주체적인 연구에 필요한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러 흐름에 역행하더라도 ‘의심하려는 의지’(will to doubt)를 갖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교토대학이 그 오랜 학술 연구의 전통으로서 중시해 온 독창성이나 개척자 정신의 바탕에는 바로 이 ‘의심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학술 연구란 어떤 영역이든 개인의 호기심이나 미지에 대한 탐구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당사자에게는 즐겁고 도전적인 것입니다. 그 기쁨이야말로 결국 학술 연구의 원동력이며, 이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저 또한 반세기 가까이 학술 연구의 세계에서 지내며 고민도 상당히 많이 했고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은 그러한 고민과 고생조차도 즐겨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앞으로 이곳 교토대학의 대학원 과정에서 마음껏 연구 생활을 즐기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축하 말씀을 대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