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졸업식 축사(2026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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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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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 여러 학부에서 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오늘 떳떳이 졸업식을 맞은 2,765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 및 재학생을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하는 날까지 여러분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신 가족 및 친척 여러분도 정녕 기쁘시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교토제국대학이 1900년에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126년에 걸친 본교 졸업생 수는 여러분을 포함해 231,573명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교를 졸업하는 여러분 대부분이 입학하신 날은 딱 4년 전인 2022년 4월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해 2월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인 군사 침공이라는 급작스러운 뉴스를 접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 후에도 전란이 확대되어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국내외로 대피할 수밖에 없어진 상황에서 대학생들도 대학이 폐쇄되면서 안전한 해외에서 학업을 계속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본교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한 타라스 셰우첸코 키이우 국립대학교 및 키이우 공과대학교와 어떻게 연락을 취해 보니, 현지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 한 학생이라도 더 교토대학에서 받아 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영입 준비에 들어가 2달 후인 4월 28일부터 ‘우크라이나 위기지원기금’을 모집하고, 그 해 가을까지 우선 학생 15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키이우에서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힘들게 일본에 당도한 학생들이 불안한 와중에도 안도가 섞인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 지금도 잘 기억납니다.

그로부터 벌써 만 4년 이상, 안타깝게도 그들의 고향에서는 아직도 전쟁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지원기금 덕분에 키이우 학생 영입은 매년 계속되어 금년도로 총 약 70명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국제 교류 행사, 또는 강의나 클럽 활동에서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고향에 한시라도 빨리 평화가 찾아와 그들이 안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면학을 재개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보사회라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인데, 우리의 커뮤니케이션도 인터넷을 매개로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한편, 대학 입학 전에 수업이나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온라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종 감염병 팬데믹을 경험한 여러분 중에는 본교에 입학한 후 새삼 사람과 사람 간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발견한 분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어를 통한 직접 대화에서는 실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무의식 중에 오감이라 불리는 모든 감각을 통해 그 자리의 정보를 감지하고, 이를 종합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그 자리의 분위기와 뉘앙스를 캐치’하거나 ‘상대의 심경을 헤아리는’ 식의 ‘사람다운’ 의사소통으로 이어진다 생각합니다.

그럼 ‘사람다움’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Rutger Bregman은 저서 ‘휴먼카인드(Humankind)’(분게이슌쥬, 2021년)에서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커다란 특성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연구 그룹은 인간 유아와 성장한 오랑우탄 및 침팬지를 이용한 일련의 시험을 통해 공간 인지 능력, 계산 능력, 인과성 인식 능력에 대한 비교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인간을 유아로 선정한 것은 생후에 받는 학습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이 세 그룹은 거의 비슷한 고득점을 나타내며 작업 기억과 정보 처리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비슷한 결과는 그 외의 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능력과 함께 사회적 학습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실시한 결과,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유인원 그룹의 대부분은 거의 0점이었던 데 비해 인간 유아는 거의가 만점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학습’이란 타인에게서 배우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과 그 외의 유인원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는 타자와의 대화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그 사회성에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흥미롭게도 인간에게 있어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그 신체적 특징으로도 나타나는 듯합니다. 그 중 하나는 ‘얼굴을 붉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끄러운 수치심을 느끼면 개인차는 있더라도 얼굴을 붉히곤 합니다. 인간은 얼굴을 붉히는 유일한 동물 종이며 진화론을 주창한 Charles Darwin은 ‘인간 및 동물의 감정 표현’(원저 1872년)에서 얼굴을 붉히는 것(Blushing)을 ‘모든 표정 중에서 가장 독특하며 가장 인간답다(the most peculiar and the most human of all expressions)’고 표현했습니다. 얼굴을 붉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쓴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회적 감정 표현이며 타자와의 신뢰나 협력 등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현상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흰자위’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우리가 ‘검은자위’라고 부르는 둥근 동공과 홍채 주위로 하얀 강막으로 둘러싸인 ‘흰자위’라 불리는 영역이 있는데, 인간은 이 흰자위가 넓어서 검은자위의 미세한 움직임이 시선을 예민하게 반영하게 됩니다. 즉 마주보는 타자는 검은자위의 움직임에 따라 상대의 시선을 민감하게 따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200종 이상의 영장류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인간 외에는 모두 강막 영역이 작은 데다 황토색 등의 색깔을 띠고 있어 타자가 시선의 움직임을 알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눈은 입만큼 말한다’는 말도 있듯이, 인간 특유의 검은자위 움직임은 타자와의 대화적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속마음이나 미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발달해 왔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자인 Timothy Snyder 현 토론토대학교 교수는 인터넷 시대의 교훈 중 하나로 ‘상대의 눈을 보라. 그리고 잡담(small talk)을 하라’고 재미있는 제언을 했습니다. 컴퓨터는 마주 봐 주지 않지만, 인간은 시선을 받으면 좀처럼 무시하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앞으로 사회로 나아갈 여러분은 나와는 다른 의견이나 관점을 지닌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논의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토대학에서 여러분이 경험한, 상대의 눈을 보면서 나누는 잡담은 이를 위한 좋은 수업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4년 전 입학식 축사에서 여러분이 앞으로 ‘자기 발견’과 ‘자기 표현’을 위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게 되며, ‘자기 발견’은 종종 새로운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대학 생활 중에 여러분은 새로운 친구나 선배, 마음을 사로잡은 책, 인상에 남았던 사건 등 다양한 ‘만남’을 가졌을 텐데, 과연 새로운 ‘자기 발견’은 있었을까요?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식을 종종 Commencement라고 부르며, 많은 대학들이 입학식이 없는 대신 졸업식을 성대하게 축하하곤 합니다. Commencement는 본래 ‘시작’, ‘개시’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대학 졸업식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의식과 다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기 발견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문턱을 가능한 한 낮추고, 그 새로운 만남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에서 우러나는 새로운 자기 발견이야말로 여러분의 잠재적인 특성과 역량을 남김없이 끌어내 자기 표현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21세기의 총아들인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100세 시대 인생’은 이 자기 발견과 자기 표현의 프로세스를 여유롭게 몇 번이나 반복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줍니다.

오늘 교토대학 학사 과정을 수료하신 여러분은 앞으로 더욱 고도의 연구 세계로, 혹은 실제 사회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졸업생들에게 매년 캐나다 Lucy Maud Montgomery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 앤 셜리의 대사를 들려 드리고 있습니다. 앤이 마침 지금의 여러분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을 시기를 그린 ‘길 모퉁이: The Bend in the Road’라는 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I love bended roads. You never know what may be around the next bend in the roads.”
“나는 길모퉁이가 있는 길을 참 좋아한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대체 어떤 풍경일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되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먼 앞까지 내다볼 수 있는 곧게 뻗은 길은 안심되고 좋을 수도 있겠지만, 길모퉁이가 있는 길은 여러분에게 상상도 못한 만남을 가져다 줄지도 모릅니다. 앤 셜리처럼 인생과 자연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한없이 밝은 낙관주의를 통해 여러분이 멋진 만남을 많이 가지시기를 기대합니다. 때마침 우연 같은 발견을 가져다 주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그런 준비가 된 마음에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건전한 시민으로, 앞으로 다양한 길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대담하게 개척해 나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제 축사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