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18명의 여러분,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빈으로 오신 오이케 가즈오(尾池和夫) 전 총장님, 고무로 마이(小室舞) 님, 참석하신 이사, 관계 부국장을 비롯한 교토대학 교직원 일동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의 여러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여러분의 노력은 물론이고, 동시에 여러분의 노력을 다양한 형태로 지지해 주신 가족, 선생님, 친구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꼭 가슴에 새겨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드디어 여러분은 교토대학의 학생이 되셨는데요, 본교를 지망하면서 교토대학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들어오셨는지요? 메이지 30년에 설립된 클래식 대학,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및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리서치 대학, 세계 각지에서 조사 및 필드 활동을 하는 어드벤처 대학, 혹은 반골 정신이 강한 야성적인 오피니언 대학 등 여러 이미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자유의 학풍’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유의 학풍은 다양한 교토대학의 이미지의 기초가 되는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사회의 유행, 관습, 제도 등 다양한 외부적 요소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학문, 혹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찾아내어 스스로의 의지로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16세기 프랑스의 에티엔 드 라 보에시(Estienne de La Boétie)라는 조숙한 사상가는 지금 여러분과 거의 비슷한 나이에 고전의 명저로 꼽히는 ‘자발적 노예론’(에티엔 드 라 보에시 저, 니시타니 오사무 감수, 야마조우히로쓰구 역, 지쿠마학예문고(지쿠마쇼보), 2013년), (한국어 출판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 내용을 요약해보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유란 생물의 본성이며, 야생마는 조련하려고 하면 재갈을 물며 저항한다. 그러나 계속 재갈을 물리면 결국 말은 기꺼이 재갈을 물고 그것을 즐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사람은 주변 환경과 관습에 의해 쉽게 자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망 대학 입학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매우 제약이 많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서 큰 자유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에시의 말처럼 정신의 자유는 관습과 편견, 선입견에 얽매여 흘러가버리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정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마음을 열어두고 많은 새로운 만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뜻밖의 행운을 얻는 것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합니다. 역사적인 과학적 대발견도 가끔 세렌디피티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렌디피티는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자유로운 마음으로만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시작하게 될 새로운 대학생활은 그동안의 생활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다양한 만남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책이나 특정한 사건이든,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두려움 없이 향해 나아가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세렌디피티를 꼭 손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뜻밖의 행운인 만남인 세렌디피티로 이어질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해외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대학생들의 해외 유학 희망자가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합니다. 문부과학성의 조사에 따르면 그 주된 이유는 우선 경제적 이유이며 다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관심 분야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본교에서는 재학 중에 해외 도항이나 유학생활을 지원하는 장학금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이를 이용하여 해외 생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 제가 여러분에게 해외 유학을 권하는 것은 반드시 유용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터넷이 발달된 오늘날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해외 사람들과의 교류도 많은 부분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외의 다른 습관과 문화 속에 실제로 몸을 담고 외국인들, 특히 동세대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리얼한 체험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큰 자극을 줄 것입니다. 저는 20대 후반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제 그 후의 행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해외 유학을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의 한 대학교수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의대생 시절부터 연구실에 드나들며 그곳에서 지도를 받으면서 면역학 실험을 해왔습니다. 교토대학 연구실에서는 교원과 대학원생이 언제든지 여러분을 후배로 대해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리서치 대학, 즉 연구 대학에 있는 것의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저도 그렇게 실험에 열중하던 와중에 나름대로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나와서 면역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학교수에게 편지를 써서 의견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평범한 학생의 편지였기에 답장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쯤 후에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에 오니 교토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큰일이 났다고 당황했습니다. 특별히 영어회화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용기를 내서 만나 실험 결과 등에 대해 필사적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영어로 의사소통은 어떻게든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 교수가 ‘흥미로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뉴욕에 있는 제 연구실에 꼭 오십시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자격의 의무인 임상 연수를 수료함과 동시에 뉴욕으로 유학하여 3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 연구자들과 더불어 연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수님의 권유에 망설이다가 도망쳤다면 그 후 제 인생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세렌디피티는 마음가짐이 있는 마음에 처음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본교 캠퍼스에는 세계 각국에서 많은 유학생과 연구자들이 찾아와 배우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직도 전쟁이 계속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시민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본교에 유학하여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캠퍼스 내 교실이나 식당 등에서 그들과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교류해 주시기 바랍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씨는 건축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낀 20대 초반에 혼자서 7개월 동안 유럽 전역을 엄청난 고생을 해가면서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교토대학 창립 125주년 기념 특별 심포지엄’에서 들려주셨습니다. 그 가난한 여행 속에서 안도 씨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도시의 다양한 유적과 건축물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독학으로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을 꿈꾸며 엄청난 공부와 독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안도 씨는 젊은 시절의 이 해외 경험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원점이라고 거듭 말씀하셨고, 이 경험이 훗날 세계를 감탄케 하는 독창적인 안도 다다오의 건축 월드를 펼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안도 씨는 늘 입버릇처럼 젊은이들은 더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자신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작년에 이어 여러분의 선배가 신입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는 본교 졸업 후 미국 대학원을 거쳐 유엔난민 고등판무관사무소(UNHCR)에 입사하여 전 세계의 많은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활약하고 있는 아오야마 아이(青山愛)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어서 올해는 떠오르는 신예 건축가 고무로 마이 씨가 등단할 예정입니다. 자기소개를 먼저 해주시겠지만 고무로 씨는 본교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스위스 대학에 유학하고 이후 해외 유명 건축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18년 독립하여 홍콩과 도쿄에 건축 사무소를 설립하였습니다. 현재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입니다. 대학 졸업 후, 고무로 씨가 어떻게 세계를 향해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해 왔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시작될 교토대학에서의 학생 생활에서 여러분이 다양한 만남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멋진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축하 말씀을 대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