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대 총장 미나토 나가히로(湊 長博)
오늘 교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수여받는 95명 여러분, 석사(전문직) 학위를 수여받는 5명 여러분, 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209명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학위를 수여받는 여러분 중에는 160명의 유학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적하면 교토대학이 수여한 석사학위는 97,391명, 석사(전문직)학위는 3,030명, 법무박사(전문직) 학위는 3,195명, 박사학위는 50,543명입니다. 교직원 일동과 함께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교토대학의 석사 또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됩니다. 과거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지던 이른바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급속히 경제 침체기에 접어든 1990년대 초, 문부과학성의 대학심의회가 대학원 입학자 수를 배로 늘린다는 제언을 하고 대학원 중점화가 추진되었습니다. 이는 전국 국립대학의 교육연구 조직을 기존의 학부 중심 조직에서 대학원 중심의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대담한 정책이었으며 학술 연구 역량 강화를 통해 고도 전문 인재 양성을 촉진하고 다시금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의 표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의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 수립을 위해 조사 데이터를 제공하는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 연구소(NISTEP 나이스텝)의 ‘과학기술지표 2026’에 따르면 사반세기 이전인 2000년 일본의 인구 100만 명당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127명으로 약 320명인 독일, 약 200명인 영국보다는 뒤처지지만 프랑스나 한국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3년 후인 2023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독일은 물론 영국, 한국이 모두 300명을 훌쩍 넘어선 반면 놀랍게도 일본은 124명으로 정체 상태입니다. 이는 석사학위 취득자 수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주요국 중 가장 적은 수치입니다. 일본의 인구 100만 명당 석사학위 취득자 수는 영국의 약 9%, 독일 및 미국의 약 22%에 불과합니다. 13년 전과 비교하면 일본은 1%만 증가했으나 다른 국가들은 10% 이상 증가했고 특히 영국은 86%, 중국은 180%나 증가했습니다.
일본의 박사학위 취득자 수에는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학술 분야의 균형입니다. 2023년도 기준으로 일본의 박사학위 취득자 수 대부분은 자연과학 분야이며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취득자는 약 9.1%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이나 독일의 약 20%, 프랑스, 영국, 한국의 30% 이상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며 일본에서는 특히 인문사회과학 영역의 박사학위 취득자가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 가까이 국립대학의 대학원 중점화 정책이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중 왜 일본에서만 박사학위 취득자 수가 증가하지 않았을까요?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릴 만큼 긴 경제적 침체기에 있었던 점,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을 비롯한 생활 지원이 극히 미흡했던 점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요인은 역사적으로 일본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의 커리어 패스가 오로지 대학이나 공공 연구 기관 등의 연구직에 크게 치우쳐 있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2026년 ‘과학기술지표’에 따르면 박사학위 취득자의 진로 중 약 75%는 대학 및 공공 연구 기관이며 민간 기업은 15%에 불과합니다. 이는 일본의 새로운 학제 하에서 대학 자체가 대학원 교육을 주로 아카데미아의 교원이나 연구자 양성 과정으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학 등의 교원·연구자 자리는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게다가 민간 부문에서도 기업의 중앙연구소가 점차 축소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는 동기 부여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미국의 박사학위 취득자들의 진로 현황을 보면 대학 등 연구 기관과 민간 기업이 거의 동등한 비율을 차지하며, 모두 약 42%를 기록하고 있어 일본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대학원 제도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지도적 엘리트로서 정계, 관계, 산업계, 언론, NPO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널리 진출해 활약해 온 경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일본에서는 이른바 ‘제2의 대학원 중점화’라고도 할 수 있는 큰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물론, 정부·산업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적으로 대학원 진학자와 학위 취득자 수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시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때 ‘동양의 기적’이라 불리며 전후 부흥과 발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도 20세기 말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급속한 기술 혁신과 세계화의 전개 속에서 오랜 경제적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학원 교육을 받은 고도 전문 인재에 대한 기대가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급속히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2024년 문부과학성에서 발표한 ‘박사 인재 활약 플랜 ~박사학위를 취득하자~’, 국공립·사립 대학과 경단련 대표자로 구성된 ‘박사 인재에 관한 산학협의회’가 올해 2월에 공표한 ‘박사 인재가 활약하는 사회의 실현을 향하여 ~지향해야 할 모습과 구체적인 방안’에 담긴 제언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문부과학성은 급부형 장학금을 대폭 확충하기 시작했으며 산업계에서도 다양한 학위 취득자 우대 제도와 인턴 제도를 마련하여 박사 인재가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최근의 동향은 모두 가장 고도의 교육을 받은 학위 취득자에 대한 사회의 큰 기대를 보여주는 것이며 현재 정부·산업계를 포함해 국가 차원에서 고도의 학식을 갖춘 학위 취득 인재가 아카데미아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다양하고 폭넓은 영역에서 대학원에서 습득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기류가 고조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최근까지 세계는 IT(정보 기술) 시대의 도래라고 불리며 컴퓨터·프로그래밍 인재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미국에서도 대학이나 전문학교에서 대량의 프로그래머 양성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CNN 뉴스는 이렇게 졸업한 수만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취업할 곳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생성형 AI의 급속한 보급 때문입니다. 최근의 AI는 고도화되어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자동으로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하는 프로그래밍은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 지금은 AI의 시대이며 그 보급으로 인해 사라지게 될 직업은 무엇인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인지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CNN 뉴스 인터뷰에서 베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AI가 엔지니어인 당신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AI를 구사하는 엔지니어가 엔지니어인 당신을 대체할 것입니다. ‘AI will not replace you as an engineer. An engineer with AI will replace you as an engineer.’”
오늘날 AI를 통해 도대체 무엇이 어디까지 가능해질지가 주로 논의되고 있는 듯하지만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과 사회에 어디까지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우리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최초의 연구 대학원인 존스 홉킨스 대학 다니엘 길먼(Daniel Coit Gilman) 초대 총장의 전기에는 박사학위 PhD(Doctor of Philosophy)란 ‘변화무쌍한 학위’(the protean PhD)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AI의 확산을 비롯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변화의 시대일수록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과학적 탐구’의 실천을 통해 이성을 수련해 온 여러분과 같은 인재들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활약함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하면서 여러분은 명시적으로 언어화된 지식이나 정보뿐만 아니라 이를 훨씬 뛰어넘는 많은 정보를 몸소 습득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암시적인 정보는 의식 아래 장기간 남아 여러분의 감성과 사고를 키우며 뜻밖의 형태로 의식 위로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이를 ‘암묵지(tacit knowledge)’라 부르며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요 국가 중 학위 소지자 비율이 높은 영국의 대학원에서는 학생들이 연구 활동을 통해 과제 발견 및 해결에 이바지하는 보편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이러한 기본 기술은 대상 과제가 바뀌어도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가능한 기술, 트랜스퍼러블 스킬(transferable skills)이라 불리며 학위 소지자가 실사회에서 새롭게 마주할 다양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메이지 유신의 전년도인 1867년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명예 총장 취임 연설 <대학 교육에 관하여(J.S. 밀 지음, 다케우치 잇세이 역, 이와나미 문고, 2011년)>에서 밝힌 대학 교육의 이념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지성은 단순히 한 가지 사안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사안 혹은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다양한 사안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결합시키는 단계까지 이릅니다.”
즉, 학위 소지자란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의 철학’을 지닌 지적 엘리트여야 합니다.
나아가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2020)>에서 지적 엘리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공동선(common good)에 기여할 때만 완전한 사람이 되며, 우리가 한 기여로부터 우리 동료 시민들의 존경을 얻는다’. 여러분이 진정한 의미의 책임감 있는 지적 엘리트로서 사회로부터 굳건한 인정과 존경을 받는 활약을 함으로써 일본 학위 소지 인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한층 더 높아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축사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오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