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대학원 후기 학위 수여식 축사 (2019년 9월 24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실 108명 여러분, 석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9명 여러분, 박사 학위를 받으실 189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학위 취득자 여러분 중에는 유학생 164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한 학위는 이로써 석사 학위 81,428개, 석사 학위(전문직) 1,861개, 법무박사 학위(전문직) 2,258개, 박사 학위 45,039개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이사, 부학장, 연구과장, 학관장, 학사장, 교육부장, 박사과정 교육 리딩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하는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는 박사(문학)와 같이 각 전공 분야가 설정되어 있으며 총 23종에 이릅니다. 또 8년 전부터 시작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수료하신 여러분 학위기에는 그 내용이 추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여러분이 밤낮으로 절차탁마하며 역량을 갈고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저는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학위 수여는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노력의 도달점이며 앞으로의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오늘 수여된 학위가 앞으로 인생의 길을 열어 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세계는 지금 커다란 문명의 전환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진 수렵채집사회, 1만 2천 년 전부터 시작된 농경목축사회,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이 불러온 공업사회, 그리고 180년 전 전신이 발명되고 30년 전 월드 와이드 웹이 등장하면서 태어난 정보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그 변화의 파도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반세기 전에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의 공통 테마는 ‘인류의 진보와 조화’였습니다. 그 해에 교토대학에 입학한 저는 엑스포장을 하루가 멀다고 드나들면서, 대체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가슴 설레며 국가관을 돌아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국관에는 그 전해 아폴로 계획으로 달 착륙에 성공해 우주비행사가 가지고 돌아온 월석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소련관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로 대표되는 우주 개발의 성과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미쓰비시 미래관은 초대형 태풍을 제압하는 ‘기상 제어 로켓대’의 활약을 영상으로 소개하며 자연과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50년 후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했습니다. 그 상징은 누가 뭐라고 해도 ‘태양의 탑’일 것입니다. 겉모습은 신사에 모신 신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조형물로, 내부 공간에는 생물의 진화를 나타내는 ‘생명의 나무’가 가지를 펼치고 있으며 최상부에는 미래 도시 모형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야말로 고대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생명의 흐름을 상징하는 탑이었습니다. 작년 3월부터 엑스포 기념공원에서 일반 공개가 시작되어 엑스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 분들도 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 그 때 그 엑스포가 예상했던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을까요? 확실히 과학기술은 급속한 진보를 이뤄냈으며, 특히 정보통신 기술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물건과 사람의 움직임은 국경을 초월해 가속화되었으며, 세계 어디에서나 전 세계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생명과학의 성과와 농업기술의 진전으로 영양가 높고 안전하며 수확량이 많은 재배 식물과, 성장이 빠르고 맛있는 고기와 생선을 양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료기술 발전으로 인해 질병 조기 진단과 신약 개발이 진전되었고, 의료 로봇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수술을 집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드라이버 모니터링 시스템이나 스마트 시티 센싱, 카메라와 AI를 이용한 상품 식별 기술, 다국어 자동 번역 기술, 재해 정보 분석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연이어 실용화되며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기술은 아직 기후 변화나 자연 재해를 방지하고 제어하지는 못합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형 재해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후겐다케나 미야케지마, 사쿠라지마, 구치노에라부지마 등의 분화, 한신 아와지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구마모토 지진 등의 큰 지진, 더 나아가 태풍과 호우, 폭설로 인한 피해가 매년같이 일본 열도를 직격하며 많은 사상자를 내고 거주 환경과 산업 시설의 붕괴를 초래했습니다. 이를 복구하려면 방대한 노력과 시간, 자금이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주택을 잃고 시름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지진 해일 피해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노심이 녹아내려 주변 지역에 대규모 방사능 오염을 유발시켰습니다. 이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1986년 소련 체르노빌에 필적하는 중대한 원전 사고이며, 그 방사능 오염이 장기에 걸쳐 거주가 제한되는 귀환 곤란구역을 낳았고, 사람들에게 건강 피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으며, 일본에서도 많은 원전을 정지시키고 그 안전성을 정밀 점검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세계에서 국가와 정치의 틀이나 국제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 글로벌리즘의 진전이 저해되고 세계의 조화가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듯 동서 냉전이 종언을 고하며 세계는 융화를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민족 간, 종교 간 대립은 해소되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연이어 대규모 무력 충돌이 일어나 국가가 분열되고 새로운 체제로 재편되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표적으로 한 새로운 유형의 테러 활동이 등장했으며, 드론 등 원격 조작이 가능한 무기가 사용되는 등, 사람들을 커다란 불안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후 변화와 분쟁의 영향으로 많은 경제 난민이 국경을 넘어 유입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에서 배외주의가 대두되고, 핵무기와 무역을 둘러싼 국제 협정에서 이탈하거나 자원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격화되는 등 여러 문제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Yuval Noah Harari 교수는 3년 전에 펴낸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언어의 등장으로 시작된 인지혁명으로 인해 종교, 제국, 돈이라는 허구를 만들어 낸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 번영으로 이어져 왔음을 시사했습니다. 자본주의야말로 글로벌한 시야와 윤리 체계를 지녔고, 전 세계를 제패한 유일한 종교이며 세계의 모든 정부가 경제 성장이라는 사상에 홀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본질이 DNA라는 사실이 판명된 지금, 생물도 인간도 생화학 알고리즘과 네트워크 시스템의 집합체로 간주되게 되었습니다. ‘자유의지를 지닌 개인’이라는 휴머니즘의 전제 조건이 환상으로 치부되고, 앞으로는 생명조차도 정보를 조작해 창출해 내는 데이터이즘의 시대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작년에 출간된 ‘호모 데우스’라는 책에서 Harari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시달려 온 기아, 질병, 전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거의 극복할 수 있을 전망을 세웠다. 21세기의 인간이 목표로 하는 것은 새로운 3가지 과제, 즉 신성, 불멸, 행복이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생명과학으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인간은 신의 손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전자 편집이나 생명공학으로 인간이 더욱 강인해진다면, 머지 않아 불사의 몸을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해 질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두뇌를 고스란히 인공지능으로 옮겨 담을 수 있다면 뇌사가 인간의 죽음으로 간주되는 현재 개념에서는 불사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단 행복만은 정의가 애매모호해서,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과학기술만으로는 달성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습니다.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그 의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시하며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구축해야 합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 가운데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IoT) 시대입니다. 대량의 정보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삶의 효율을 더욱 끌어올립니다. 이전처럼 자원이나 물질이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고 집약시켜 다양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집약형 사회’가 도래하게 됩니다. 경제도 사람의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분산과 순환이 사회와 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런 미래 사회에서는 다양성과 창의성 외에도 글로벌한 윤리관에 기반한 자기결정력이나 조율능력 등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의 지구와 사회의 변동을 확실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려우리라 봅니다. 하지만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ies)이 경고하듯, 인구가 증가하고 인위적인 영향이 가속화되는 현대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온난화로 인해 자연 재해가 빈발하고 오염이 진행되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파리 협정에 의거해 수립한 각국 달성 목표를 확실하게 이행하고, SDGs를 세계 공통의 과제로 삼아 해결을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앞으로의 여러분의 활약이 지구와 인간의 미래를 커다랗게 움직일 것입니다.

오늘 학위가 수여된 논문에 대한 보고서를 훑어보니 교토대학다운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다채롭고 심도 깊은 기초연구가 많다는 인상과 함께 오늘날 세계의 동향을 반영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글로벌화로 인한 이문화와의 교류, 다문화 공생, 사람의 이동과 물건의 유통, 지구 규모의 기후변화와 재해,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정치와 경제의 재편성, 마음의 병을 포함한 많은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등입니다. 이 논문들은 현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나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여러 과제들을 날카로운 분석의 칼로 해부하고 그 해결을 위해 새로운 증거와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탄탄한 자료에 기반한 깊은 고찰에서 우러나온 이러한 식견은 미래를 위한 적절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목만 봐도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져 내용을 읽고 싶어지는 논문과 제 이해력을 초월한 새로운 연구가 학위 논문으로 완성되어 있어 저는 그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런 다양성과 창조성, 첨단성이야말로 앞으로의 세계를 바꾸는 사상, 문화와 과학기술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ICT 기술 발전에 의해 물리적인 공간과 가상 공간의 융합이 현저해질 것입니다. 대학은 인간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도록 이를 조정하는 싱크탱크나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책임져야 합니다. AI와 IT는 인간의 도덕적 생활에도 스며들게 될 테지만, 예술이나 인간의 감성이 도를 넘으려는 과학기술의 고삐를 그러잡는 마지막 방파제가 되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풍요로운 정보의 혜택 속에서 개인은 고독하며 위험에 맞서야 하는 불안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나누는 행복한 시간은 AI가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이는 신체에 기인하는 것으로, 효율화와는 정반대 개념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정보에는 감성이 없어서 목적에 따라 어떻게든 짜맞출 수 있습니다. 정보는 높은 편의성을 지녔지만 이는 인간의 그릇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신체성에 기인한 행복감을 현명하게 녹여 넣은 ‘초스마트 사회’를 구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넘어선 심도 있는 교양과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학위를 받으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높은 역량을 발휘해 모쪼록 이 어려운 시대에 예지(叡智)의 꽃을 피워 주시기 바랍니다. 학문을 하려면 그 시대에 대한 감성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어떤 학문을 익히더라도 폭넓은 교양과 기초가 필요합니다. 어렸을 때 자연과 어울렸던 경험이나 다른 분야에서 길러낸 식견이 미지의 영역이나 새로운 과제를 발견하는 힘을 키워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적으로 과학에 대한 태도가 획일적이며 특히 기술과 접목시켜 사회에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혁신만을 원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내 학문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 지식과 예술적 감성을 폭넓게 접하고 연구자 개개인이 자신만의 과학적 직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교토대학에서의 연구 생활을 통해 다른 분야에 널리 눈을 돌리고 활발한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학술 세계를 구축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교토대학에서 배운 증거이며 여러분의 앞으로의 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학위 논문은 미래 세대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며 여러분이 남기는 발자취는 다음 세대의 목표가 됩니다. 그 가치는 여러분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최근 과학자들의 부정 행위가 잇따름에 따라 연구자들이 사회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과 경험을 살려 아무쪼록 찬란히 빛나는 인생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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