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학부 입학식 축사 (2019년 4월 5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48명 여러분, 입학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나가오 마코토(長尾真) 전 총장님, 마쓰모토 히로시(松本紘)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 및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지낼 교토는 헤이안쿄(平安京) 천도로부터 1225년 역사를 자랑하는 풍광명미의 도시입니다. 올해 2월 96세로 유명을 달리하신 미국 출신 일본문학자 Donald Keene 박사님은 지금부터 4년 전 교토대학에서 해 주신 강연에서, 교토는 1000년도 더 된 과거의 삶을 현재에 담고 있는, 세계에서도 드문 곳이라 하셨습니다. Keene 박사님 본인도 1953년부터 1년 반 정도 교토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수학하셨습니다. 전통적 양식의 일본 가옥에서 하숙하며 화로 하나로 겨울을 나고, 신문 읽을 틈도 아껴 일본 고전 연구에 몰두하셨다고 합니다. 문학부 노마 고신(野間光辰) 교수님 강의에서 ‘소네자키 신주(曽根崎心中)’를 강독하면서 후일 문부대신이 되신 교육사회학자 나가이 미치오(永井道雄) 조교수, 학교 외부에서도 교겐(일본 전통 연극 중 하나)의 시게야마 센노조(茂山千之丞) 배우,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작가 등과 친분을 쌓으며 일본 고전문학에서 현대 일본 문화로 관심을 넓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참신한 발상이 태어났다면서, 그것도 교토라는 마을에 헤이안, 무로마치 시대의 삶과 풍경이 짙게 남아 있는 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교토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속에 약 2500개나 되는 신사와 사찰을 품고 있어 거리 곳곳에 예스러운 풍취가 남아 있습니다. 교토대학 근처에도 동쪽으로 요시다산과 신뇨도(真如堂), 서쪽으로 가모가와와 교엔(御苑), 북쪽으로지온지(知恩寺), 남쪽으로 구마노(熊野) 신사가 있어 산책하기 좋은 장소를 제공합니다. 이 계절에는 여러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신록이 산들을 물들입니다. 그런 자연의 모습을 예로부터 사람들은 시로 읊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연출하면서 산자수명의 도시의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오늘 입학식에 오신 여러분도 이 장대한 역사와 자연이 펼쳐 내는 무대에 올라 봄의 밝은 빛과 촉촉한 바람 속에서 활약할 때를 맞으려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교토대학은 이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동시에 여러분이 이 교토대학에서 세계를 향해 날개짓할 역량을 갈고 닦으시길 기원합니다.

교토대학은 1897년 창립된 이래 '자중자경(自重自敬)' 정신을 토대로 자유로운 학풍을 구축하고 창의적인 학문의 세계를 열어 왔습니다.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에 기여하는 것도 교토대학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지금 세계는 20세기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동서 냉전이 종언을 맞으며 해소될 줄 알았던 정치의 대립 구도는 민족 간, 종교 간 대립으로 인해 더욱 복잡하고 가혹해졌으며 지구 환경 악화는 가속화되고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재해와 치사성 전염병이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며 초 단위로 격심하게 요동치는 금융시장은 국가 경제와 사람들의 생활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풍파 속에서 교토대학이 ‘자중자경’ 정신에 입각해서 어떻게 이 국가와 사회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교토대학은 자학자습(自学自習) 정신을 기조로 하며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학풍의 아카데미아로 남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교토대학은 고요한 학구의 장임과 동시에 세계와 사회로 통하는 창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학은 창'이라는 표어 아래 창에서 이름을 따서 WINDOW 구상을 만들었습니다. 대학은 세계와 사회로 통하는 창이며 이를 교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열어 학생들의 등을 살짝 밀어 내보내는 것을 전교의 공통 목표로 삼은 것입니다. 각 철자를 따서 Wild and Wise, International and Innovative, Natural and Noble, Diverse and Dynamic, Original and Optimistic, Women and the World를 행동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캠퍼스는 대학 구내에 그치지 않습니다. 교토대학은 일본 전국에 많은 부설연구소와 연구센터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도 50개 이상의 연구 거점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소와 거점에서 실험과 필드워크에 참여하고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교토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량을 갈고 닦음으로써 드디어 여러분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자유인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금까지 살아 오며 몸에 밴 상식을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나와는 다른 고장에서 온 동료나 외국에서 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쉬는 날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 내가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문화에 몸을 담그고 맛보는 것도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돌려 그 배경과 요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가 교토대학 학생이던 1970년대 초반도 시대가 커다랗게 움직이려 하던 시대였습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 일본은 커다란 개발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그런 한편 공해로 인한 오염과 건강 피해가 드러나면서 근대 문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방학을 이용해 일본 열도를 북단에서 남단까지 돌아보며 그 불투명한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학생 무렵 유행했던 ‘생활의 무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교토에서 활약한 다카다 와타루(高田渡)라는 포크 가수가 곡을 붙여 노래해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사는 야마노쿠치 바쿠(山之口獏)라는 오키나와 출신 시인이 다이쇼 시대 말 무렵 21세의 나이로 지은 시입니다. 야마노쿠치 바쿠는 1922년 오키나와에서 도쿄로 올라와 그 이듬해 관동대지진을 겪게 되고, 집이 없어 공원이나 지인 집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 ‘생활의 무늬’ 가사를 소개합니다.

걷다 지치면

밤하늘과 땅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잤던 것이다

풀에 파묻혀서 잤던 것이다

아무 데서나 잤던 것이다

잤던 것이지만

잠들기도 했던 것일까 !

요즘은 잠들지 못한다

땅을 깔고는 잠들지 못한다

밤하늘 아래서는 잠들지 못한다

흔들려 깨고 나면 잠들지 못한다

이 생활의 무늬는 여름철에 맞는 건지 !

잤나 했더니 찬 기운에 놀림당해

가을은 부랑자인 채로는 잠들지 못한다

야마노쿠치 바쿠는 1938년 8월 첫 번째 시집 ‘사변(思弁)의 동산’을 발표했는데, 이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생활자의 시점에서 나라에 대해 언뜻 태평해 보이는 표현으로 유유자적하게 노래한 시인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대학원에 진학해 일본원숭이와 고릴라 야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와 아프리카 콩고 삼림에서 텐트를 치고 살면서 현지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습니다. 텐트 생활은 다름 아닌 야마노쿠치 바쿠와 다카다 와타루가 노래했듯 밤하늘과 땅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자는 삶입니다. 그곳에 원숭이나 고릴라와 조상을 공유하는 인류의 감성이 직접 반응하는 세상이 있으며,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하는 원점을 느끼게 해 주는 중요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에게 방랑 생활을 굳이 권하지는 않겠지만, 교토대학이 3년 전부터 시작한 '오모로 챌린지'(오모로: '재미있는'이라는 의미의 간사이 지방 표현)라는 체험형 해외 유학 지원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제 경험을 토대로 기획한 제도입니다. 여러분도 새로운 체험에 모쪼록 도전해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작년은 교토대학 연구자들이 연달아 국제적인 상을 수상한 한 해였습니다. 수학자인 가시와라 마사키(柏原正樹) 교수님이 천상(Chern Medal Award)과 교토상을, 의학자인 혼조 다스쿠(本庶佑) 교수님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밖에도 노벨상 수상자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님, 라스카상 수상자 모리 가즈토시(森和俊) 교수님, 필즈상 수상자 모리 시게후미(森重文) 교수님 등 세계 최첨단 연구자들이 교토대학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입니다. 그 존재는 상식을 의심하고 내 머리로 생각하며 자유 활달한 대화를 통해 창의성을 연마하는 교토대학의 전통을 현재에 전해 주는 커다란 이정표일 것입니다.

물론 시대의 정신과 세계적 시류에 따라 학생들의 기질도 크게 달라집니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교수님은 본인이 교토대학 학생이던 30여년 전과 1960년대 당시 학생들의 기질 차이에 대해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옛날 학생 변론은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천하와 국가를 논하는 웅변술로 겨루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60년대 학생은 기지와 유머 넘치는 연설을 한다며 감탄했습니다. 또 옛날 학생들은 음치가 많았는데, 60년대 학생은 음감도 정확하고 작곡까지 한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단 어느 시대에나 교수를 경탄케 할 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교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 정도의 게으름뱅이도 있는데, 이는 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만고불변의 현상이라 끝맺었습니다. 청춘 시절에는 한 사람의 개인 안에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거나 모순된 경향이 여럿 공존합니다. 그런 갈등을 극복해야지만 청년은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가지각색 생각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대다수의 학생은 평범해서 즐거움도 고민도 열정도 중간 정도겠지만 그런 눈에 띄지 않던 학생 중에서 나중에 의외의 인물이 나오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고 도모나가 교수님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의 다양성을 널리 허용하고 그다지 단기적인 교육 성과를 추구하지 않았던 덕에 교토대학에서 세상의 상식을 깨는 노벨상급 발견이 태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마노쿠치 바쿠와 동시대에 학생들에게 말을 건넨 시인이 있었습니다. ‘봄과 수라’라는 시집에 실린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의 ‘생도 제군에게 보내다’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전문을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내용을 조금 보자면

생도 제군

제군은 이 시원스러운

제군의 미래권에서 불어 오는

투명하고 청결한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가

이는 하나의 쏘아진 광선이며

결정된 남쪽 바람이다

라는 시구로 시작되어

우주는 끊임없이 우리에 의해 변화한다

누가 누구보다 어떻다거나

누구 일이 어찌 되었다거나

그런 말이나 하고 있을 겨를이 있는가

새로운 시인이여

구름에서 빛에서 폭풍에서

투명한 에너지를 얻어

사람과 지구에 의해야 할 형태를 암시하라

라고 이어지고

대략 통계를 따른다면

제군 중에는 적어도 천 명의 천재가 있어야 한다

소질 있는 제군은 단지 이를 새겨 내야 한다

조수와 폭풍 ……

온갖 자연의 힘을 다 이용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제군은 새로운 자연을 형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 제군은 지금

이 시원스러운 제군의 미래권에서 불어 오는

투명한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가

라는 물음과 함께 끝납니다.

이 시에는 청년들의 맑고 산뜻한 영혼에 미래를 맡기는 미야자와 겐지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저도 같은 마음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현대는 미야자와 겐지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대학에도 국제화의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래에 활약하게 될 무대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크게 벗어나 전 세계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자연 자원이 많지 않은 일본은 첨단 과학기술로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기를 개발해 잇따라 이를 세계에 전파해 왔습니다. 해외로 진출하는 일본 기업이나 해외에서 일하는 일본인은 더욱 증가했으며 일본 기업이나 일본 사회에서 일하는 외국인 수도 증가 일로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흐름을 타는 날이 곧 올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은 물론 해외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잘 알고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화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광범위한 교양과, 상식에 의심을 품고 진리를 탐구하는 기개를 갖춰야 합니다. 이과 계열 학문을 공부하고 기술 부문에 취직한다 해도 국제적인 협상에서는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필요해지며, 문과 계열 일을 하면서도 과학기술 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많이 발생합니다. 세계와 일본의 역사에도 정통한 공공지식인, 즉 public intellectual 수준의 질 높은 지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교토대학은 전교 교수들의 협력을 얻어 질 높은 기초/교양 교육 실천 시스템을 구축해 왔습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계층성을 고려해서 클래스 배당 과목과 코스 트리 등을 고안해 교수와의 대화 및 실천을 중시한 세미나 및 소인원 세미나를 배치했습니다. 외국인 교수도 대폭으로 늘려 학부 강의와 실습도 영어로 실시하는 과목을 증설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계에서 실천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5개 박사과정 교육 리딩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며 작년부터 탁월대학원 프로그램도 시작했습니다. 첨단적 학술 허브로 고등연구원을 설치해 교토대학의 학문을 통해 전 세계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학생의 창업가 정신을 함양하는 ‘학생 챌린지 콘테스트’와 방금 말씀드렸던 ‘오모로 챌린지’ 외에도 다양한 유학 코스를 제공합니다. 외국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배움의 장에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역량을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교토대학은 교육과 연구활동을 더욱 내실화해 학생 여러분이 안심하고 알찬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책으로 교토대학기금을 설립했습니다. 오늘도 가족 여러분께 이 기금에 대한 안내 자료를 나눠 드렸습니다. 입학 기념 특별 기획도 마련되어 있으니 아무쪼록 나눠드린 안내 자료를 봐 주시고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이라는 이상적인 대화의 장에서 많은 학우들과 교류하며 미지의 세계를 즐기고 만끽하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는 ‘야마노쿠치 바쿠 시집’(이와나미쇼텐, 2016년)에서 인용해 한국어로 번역)
(‘ '는 ‘미야자와 겐지 시집’(이와나미쇼텐, 1950년)에서 인용해 한국어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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