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졸업식 축사 (2019년 3월 26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을 졸업하시는 2,876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장님, 나가오 마코토(長尾真)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식을 맞을 때까지 여러모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20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11,548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입학한 이래 어떤 학생 생활을 보내셨나요? 오늘은 부디 지금까지 몇 년간 교토대학에서 지낸 나날들을 떠올려봐 주십시오. 힘든 입시 전쟁을 이겨내고 입학하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계셨나요? 오늘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그 꿈이 크게 바뀌었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시려는 길은 그 당시 꿈과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작년에 본교 혼조 다스쿠(本庶佑) 특별교수님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혼조 교수님의 연구 인생도 길고 험난했으며 몇 번이나 좌절과 인내가 필요했던 여정이었습니다. 이를 교토대학에서 경험하신 것을 저는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12월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혼조 교수님과 함께 참석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전통 있는 스톨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 왕실과 전 세계 과학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혼조 교수님이 기모노 차림으로 등장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상장을 수여받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일본의 연구력 저하가 우려되는 현대에도 교토대학의 창의적이고 첨단적인 연구력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시상식에 참석한 많은 과학자들이 혼조 교수님과 교토대학의 연구가 훌륭하다고 칭송해 주셨습니다. 노벨 재단으로부터 소개도 있었습니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면역 시스템과 혼조 교수님, 그리고 공동 수상하신 James Allison 교수님의 공적을 오케스트라의 힘을 빌려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The immune system is based on a diversified array of instruments, in the form of various cells and molecules. Each of them has its own special sound and technical requirements to get them to work, a bit like the instruments in the orchestra here today."

"T cells - a kind of white blood cells that act, among other things, as killer cells - use a special instrument called a receptor to identify cancer cells as foreign. By the 1990s, cancer immunology researchers had shown that T cells will then react, but unfortunately in a much too timid way. Let's ask the orchestra to illustrate."

"Beautiful and clear, but alas – so short, slow and weak! Playing "andante and pianissimo" was not enough to eliminate cancer cells. This year's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goes to two researchers who discovered how we can release the brakes that hold back the immune system, thereby mobilising it for cancer therapy. Both Laureates are immunologists, but neither was actually a cancer researcher from the beginning. This story therefore illustrates something important: the unexpected benefits of basic research."

"The two therapies have especially strong effects when used together. Let's get a preview by returning to our immune system orchestra. You remember how pathetic it sounded last time. Now let's hear how the same reaction looks when we release the brakes. Maestro?"

"Allegro e Fortissimo! That was a bit different, the way it should sound! By orchestrating the immune system in the right way, it has proved possible to control or eliminate the disease in tens of thousands of patients. Many are still tumour-free after more than five years. This new pillar of cancer therapy is already solid, and the Laureates' discoveries have inspired a whole new field of research. Like the Carmen Overture, it promises an exciting future."

즉 면역 시스템이란 여러 가지 세포와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 다양한 악기의 배열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각각이 고유의 소리를 지니고 있어서 그 기능을 발휘시키려면 오케스트라 악기와 같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것은 '안단테 그리고 피아니시모'였는데, 이런 부드러운 연주로는 암세포를 제거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혼조 교수님과 Allison 교수님은 면역 시스템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를 풀어서, 암 치료를 위해 이를 가동시키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브레이크를 풀면 어떻게 되는지를, 다시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려줬습니다. 이번에는 '알레그로이면서 포르티시모', 대단히 활기찬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치료법은 몇 만 명이나 되는 환자로부터 질병을 없애고, 나아가 새로운 연구 영역에 눈뜨게 해 주었다. 이에 대해 카르멘 전주곡처럼, 흥분으로 가득 찬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라 평했습니다.

노벨 재단은 혼조 교수님도 Allison 교수님도 면역학자로, 처음에는 암 연구자는 아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생각지 못한 발견과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진 것은 기초 연구의 예기치 못한 성과라 칭송했습니다. 이는 혼조 교수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데, 기초 연구를 끈질기게 계속하며 상식을 의심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교토대학의 정신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는 어떤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세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보낸 몇 년 동안에도 세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구마모토 대지진 피해 복구가 부진한 와중에 작년에는 홋카이도 이부리 동부 지진이 일어났고, 수많은 태풍이 일본 열도를 종단하며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민족과 종교에 의한 대립이 격화되어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각국의 기존 협력 체제와 연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으로 흔들리는 EU, 자국 우선주의 방향으로 기울어 가는 미국, 유동화되는 동아시아 정세 등, 이런 세계의 급속한 움직임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결의를 새로이 다지셨나요?

생명에 관한 개념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작년에는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쌍둥이가 태어나며 디자이너 베이비 문제로 생명 윤리에 관한 논의가 달아올랐습니다. 올해 들어 유전자 편집을 이용한 원숭이 클론도 탄생했습니다. 일본에서도 iPS세포나 ES세포를 이용한 의료 기술이 급속히 진전해 사람의 장기를 돼지 몸 속에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생명 환경과 인간관을 둘러싼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 생명의 기원과 유전적 시나리오에 수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의 연령 구성과 인생 계획을 크게 좌우하고 미래 사회의 동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 의료가 사업과 손잡고 바이오 벤처의 형태로 거대한 부를 창출하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다양한 생명의 장대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생물로서의 인간, 문화를 가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다시금 종합적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활약하게 될 것은 Society 5.0이라 불리는 초스마트 사회입니다. 여기서는 ICT 기기가 위력을 발휘해 사람들과 물건을 연결하고 로봇이나 AI가 많은 일을 대체하게 되어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맞닿으며 살아가는 힘을 발휘해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세계는 자본집약형, 노동력집약형 사회에서 지식집약형 사회로 변모하려는 중입니다. 일본도 도쿄 일극(一極)집중형 경제에서 지역분산형 경제로 탈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여러분의 힘입니다.

앞으로의 사회에는 기존에는 없었던 인간관과 자연관이 필요합니다. 첨단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지금까지 시대에 뒤떨어졌다 여겨져 왔던 생각을 갈무리해 미래를 다시금 직시하는 것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온고지신,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아는 정신이 더욱 더 필요해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에는 정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기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영상이 정보기기를 통해 무료로 유포되며 이제 서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선도하는 혁신에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적인 지식과 함께 확고한 인간관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종합적인 학술연구의 축적을 통해 재검토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토학파라 불리는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심도 싶은 사고의 수맥을 개방할 때가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의 문제는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뒷받침하던 자본주의의 원칙, 즉 '경제 성장은 최고의 선'이라는 이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교토대학 학생이었던 1970년대 초반은 아직 일본이 고도성장 시대여서 바로 눈 앞에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열렸으며 과학기술을 통해 잇달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려는 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공해 문제와 온난화 등 환경 악화가 지구 규모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후에 '지속 가능한 개발'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지구의 열화를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이 여럿 생겨났습니다.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며 인간이 발전하는 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 이념이 된 것입니다. 일본 산업계도 파리기후협약에서 제창된 SDGs(지속가능 발전 목표)에 기반해 기업 윤리와 전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사회에는 지구 규모로 생물 다양성과 인간 사회를 포용적으로 파악하는 사고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도 지금까지 교토대학을 졸업한 많은 선배들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를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 논의와 학우들은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한 적 없는 미지의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도전정신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중에도 다양한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이미 그것을 발휘해 활약 중인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 교토대학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내보이고 시험할 기회가 앞으로 틀림없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판단을 내려서 직면한 과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이 때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지구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달성해야 하는 커다란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 조화가 무너지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공존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이 난제에 직면하는 사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토론 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스스로의 과제에 맞서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여주실 자세와 행동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분 뒤를 따르게 될 재학생들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은 크게 갈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 길이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자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 속 내용은 NobelPrize.org(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8/ceremony-speech/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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