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박사 학위 수여식 축사(2018년 9월 25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

오늘 교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실 187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학위 취득자 여러분 중에는 유학생 60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한 박사 학위는 이로써 누계 44,265개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부학장, 연구과장, 학관장, 학사장, 교육부장, 박사과정 교육 리딩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하는 박사 학위는 총 20종에 이르며 박사(문학)와 같이 각 전공 분야가 칭호 뒤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또 7년 전부터 시작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수료하신 여러분 학위기에는 그 내용이 추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여러분이 밤낮으로 절차탁마하며 역량을 갈고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저는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학위 수여는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노력의 도달점이며 앞으로의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오늘 수여된 학위가 앞으로 인생의 길을 열어 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저는 총장에 취임하기 전에 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고릴라를 연구했습니다. 열대우림, 흔히 정글이라 불리는 곳은 고온다습하고 다종다양한 균류와 식물들이 무성하며 곤충을 비롯해 파충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물들이 밤낮으로 활동합니다. 정글은 육상생태계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임과 동시에 여러 생물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종을 연달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총장이 되어 대학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 정글과 대학이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대학은 세상의 다양한 지식이 모여드는 장소이며, 또 지금까지의 역사를 짊어져 온 지식도 이곳에서 취합되어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됩니다. 실로 시공을 초월한 지식의 거점이며 그러한 지식들을 구사해 창의적인 활동을 펼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학도 정글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종, 즉 새로운 생각이 잇따라 태어나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학위를 취득한 여러분은 그 최전선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며,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입장에서 출발선에 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앞으로 사회에 진출할 사람에게도, 대학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할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입니다. 세상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발견해서, 그것을 내가 놓인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길러 온 지식의 힘과 독창성을 구사해 풀어 나간다는 작업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내 일생을 걸고 도전해야 할 커다란 과제를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올해 7월, 도쿄에서 교토대학-이나모리재단 합동 교토상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생명의 신비와 밸런스’라는 테마로,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의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 교수님, 교토대학의 모리 가즈토시(森和俊) 교수님, 오사카대학의 나가타 시게카즈(長田重一) 교수님, 도쿄공업대학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교수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이 분들의 전공분야가 서로 다른데도 각자 다른 접근법을 통해 생명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오스미 교수님과 나가타 교수님은 이학, 모리 교수님은 약학, 후쿠오카 교수님은 농학 전공인데, 모두 생명과학에 눈을 뜨게 되어 세포의 신비로운 활동을 연구하시게 됩니다. 오스미 교수님은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오토파지라는 현상을 발견하셨고, 모리 교수님은 단백질을 합성하는 소포체 활동을 밝혀내셨습니다. 나가타 교수님은 세포가 스스로 죽어 가는 아포토시스라는 현상을 규명하셨습니다. 후쿠오카 교수님은 이런 끊임없는 세포의 분해와 합성 작용을,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지 않고 엔트로피를 항시 계속해서 버리는 ‘동적평형’으로 설명하며 생명의 본질을 정의하셨습니다. 제가 더욱 감명받은 부분은 이렇게나 뛰어난 발견을 이뤄 내신 네 분이 아직도 생명은 규명되지 않았다며 그 수수께끼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진정한 연구자는 평생의 과제를 결코 포기하는 일 없이 탐구를 계속합니다. 그 모습에 저는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유전자 변형이나 게놈 편집으로 생물이 크게 개조되고 우리 세상에 인공지능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를 맞게 되면서 생명의 본질을 찾는 일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는 생각입니다.

현대는 불확정성이 높은 시대라고들 합니다. 정보통신기기의 발달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방대한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반면 어떤 것이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역사가 새로 편찬되고 재해석되면서 역사적 인물의 평가도 계속 바뀝니다.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ies)이라는 개념이 제창되고 그 9개 조건 중 몇 가지가 한계치를 넘어섰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수치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비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각국에서 공유하는 한편으로, 그와는 다른 수치를 제시하며 온난화는 지구 기후변화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하며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는 대통령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지진과 쓰나미를 견딜 수 있는 기준이나 원자력발전소의 취약성, 방사능에 의한 건강 피해를 둘러싸고 어느 데이터를 활용해야 할지 연구자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안전과 안심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 현대인이 고도의 정보 인프라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통수단도 건물도, 식량이나 물의 공급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전기화되고 정보화되어 유지되고 있습니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재해로 통신망이나 전기가 중단되면 그 순간 바로 모든 것이 멈춘다는 것을 올해 일본을 덮친 재해를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문제는 그 정보 시스템의 내용을 모르는 채로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스템이 중단되더라도 일반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복구해 줄 때까지 불편해도 참아야 합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 사고처럼 시스템 파괴가 어느 정도의 재난을 불러올지는 여전히 확실히 밝혀진 바 없습니다. 옛날에는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환경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파괴되더라도 사람의 손으로 복구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인공적인 환경이 피해를 부풀리고, 복구에는 사람의 지식을 넘어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기술이 인간을 더 큰 불안에 휩싸이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모든 연구자가 분야를 넘어 총력을 다해 확실한 미래를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학위가 수여된 논문에 대한 보고서를 훑어보니 교토대학다운 보편적 현상에 착안한 다채롭고 심도 깊은 기초연구가 많다는 인상과 함께 오늘날 세계의 동향을 반영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글로벌화로 인한 이문화와의 교류, 다문화 공생, 사람의 이동과 물건의 유통, 지구 규모의 기후변화와 재해,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법과 경제의 재고찰, 마음의 병을 포함한 많은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등입니다.

이 논문들은 현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나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날카로운 분석의 칼로 해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증거와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탄탄한 자료에 기반한 깊은 고찰에서 우러나온 이러한 제언은 미래를 위한 적절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목만 봐도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져 내용을 읽고 싶어지는 논문과 제 이해력을 초월한 수많은 훌륭한 연구가 학위 논문으로 완성되어 있어 저는 그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런 다양성과 창조성, 첨단성이야말로 앞으로의 세계를 바꾸는 사상과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현대 일본은 세계 선진국들에 비해 연구 역량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습니다. 특히 분야를 넘나드는 대화가 저조해 산업계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점이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교토대학은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날려 버리고 시대의 선두를 달려야 합니다. 이는 곧 여러분이 지금까지 교토대학에서 키워 온 역량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나 개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재미있다고 생각한 대상과 현상을 끈질긴 인내심으로 추적하고 이를 발견으로 연결시키는 평온하고 자유로운 학문 환경과, 발견한 것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만들기 위한 수준 높은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교토대학은 지금까지 그런 환경을 유지하는 데 온 힘을 다해 왔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교토대학에서의 연구 생활을 통해 발견의 기쁨과 논문으로 완성하기까지의 고생을 충분히 맛보셨을 거라 봅니다. 나와 같은 분야, 그리고 다른 분야 동료들과 활발한 대화를 통해 나만의 생각과 세상을 구축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이는 자유로은 학문의 중심지 교토대학에서 배운 증거이며 여러분의 앞으로의 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학위 논문은 미래 세대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며 여러분이 남기는 발자취는 다음 세대의 목표가 됩니다. 그 가치는 여러분이 앞으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과 리터러시를 유지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과학자들의 부정 행위가 잇따름에 따라 사회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과 경험을 살려 아무쪼록 찬란히 빛나는 인생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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