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학부 입학식 축사 (2018년 4월 6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에 입학하신 2,961명 여러분, 입학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마쓰모토 히로시(松本紘) 전 총장님, 참석하신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 및 교직원과 함께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여러분을 지원해 오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이곳 교토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교토대학은 그 동쪽 끝에 위치해 요시다산과 다이몬지산이 가까이 보이는 풍광명미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는 여러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신록이 산들을 물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선명한 색채에 마음 설레며 새로운 배움터와 일터에서 그 때까지 쌓아 온 기력과 체력을 발휘해 활동 무대에 임하게 됩니다. 오늘 입학식에 오신 여러분도 이런 봄의 밝은 빛과 촉촉한 바람을 타고 새로운 활약의 무대에 막 오르시려는 거라 생각합니다. 교토대학은 이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동시에 여러분이 이 교토대학에서 세계를 향해 날개짓할 역량을 갈고 닦으시길 기원합니다. 교토대학은 1897년 창립된 이래 '자중자경(自重自敬)' 정신을 토대로 자유로운 학풍을 구축하고 창의적인 학문의 세계를 열어 왔습니다.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에 기여하는 것도 교토대학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지금 세계는 20세기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동서 냉전이 종언을 맞으며 해소될 줄 알았던 세계의 대립 구도는 민족 간, 종교 간 대립으로 인해 더욱 복잡하고 가혹해졌으며 지구 환경 악화는 가속화되고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재해와 치사성 전염병이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며 금융 위기는 국가 경제와 사람들의 생활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풍파 속에서 교토대학이 창립 정신에 입각해서 어떻게 이 국가와 사회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교토대학은 자학자습(自学自習) 정신을 기조로 하며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학풍의 학문 중심지로 남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교토대학은 고요한 학구의 장임과 동시에 세계와 사회로 통하는 창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학은 창'이라는 표어 아래 창에서 이름을 따서 WINDOW 구상을 만들었습니다. 즉 대학은 세계와 사회로 통하는 창이며 이를 교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열어 학생들의 등을 살짝 밀어 내보내는 것을 전교의 공통 목표로 삼은 것입니다. 각 철자를 따서 Wild and Wise, International and Innovative, Natural and Noble, Diverse and Dynamic, Original and Optimistic, Women and the World를 행동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캠퍼스는 대학 구내에 그치지 않습니다. 교토대학은 일본 전국에 많은 부설연구소와 연구센터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도 50개 이상의 연구 거점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소와 거점에서 실험과 필드워크에 참여하고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교토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량을 갈고 닦음으로써 드디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돌려 그 배경과 요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교토대학 학생이던 무렵은 과학기술이 칭송받으며 일본이 커다란 개발의 파도에 휩쓸리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방학을 이용해 일본 열도를 북단에서 남단까지 돌아보며 그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특히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에서는 바야흐로 자연도 사람들의 생활도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야쿠시마 중앙부는 규슈에서 가장 표고가 높은 미야노우라다케를 비롯해 수많은 높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으며 이끼 가득한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 험준한 능선을 타고 올라 숲을 내려다본 순간, 경악할 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가파른 사면이 모조리 벌채되어 발가숭이 초원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산길로 내려가 보니 전나무, 솔송나무, 후박나무, 모밀잣밤나무 등 보기에도 무참하게 베어내진 거목들이 도로변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임야청은 일본의 원시림을 쓸모없는 잡목림으로 간주하고 벌채한 후 성장이 빠르고 건축자재로 유용한 삼나무나 편백나무를 심었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곰이나 사슴, 원숭이가 사람 사는 마을에 출몰하게 된 것도,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게 된 것도 이런 전면적인 벌채와 식림으로 숲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의 자연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또 그 눈으로 야쿠시마를 내다보니 숲뿐만 아니라 바다도 큰 변화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어군탐지기나 무선을 탑재한 선단이 무수히 섬으로 찾아와 난획을 일삼은 결과 풍요로웠던 바다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야쿠시마의 주요 산업이었던 고등어잡이나 날치잡이로 꾸려 나가기 힘들어져 토목공사 일을 구하거나 일거리를 찾아서 섬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콘크리트 호안공사로 아름다운 해안선이 엉망이 되고 사방댐이 생겨 맑은 물의 흐름을 가로막았으며 도로 확장 공사로 숲은 토막났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야쿠시마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무렵 저는 신기한 만남을 겪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끔 가던 '호라가이'라는 록음악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 주인 중 한 명이었던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라는 분이 그 후에 인도 순례를 마치고 야쿠시마로 건너와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산 위에 거처를 마련해 괭이로 밭을 일구고 원숭이와 사슴과 노니는 청경우독의 삶을 누리며 시를 쓰고 계셨습니다. 저는 원숭이 조사를 하면서 산세이 씨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이윽고 함께 국가의 벌채 계획과 도로 확장 공사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야쿠시마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활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야쿠시마의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오랜만에 산세이 씨의 묘를 찾아뵙고 학생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당시에 우리가 야쿠시마의 자연 속에서 느꼈던 것. 이를 산세이 씨의 물이라는 시를 빌려 여러분께 전하고자 합니다.

“내가 물을 들을 때

나는 물이었다

내가 나무를 들을 때

나는 나무였다

내가 그 사람과 얘기할 때

나는 그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침묵이었다

내가 물을 들을 때

나는 물이었다”

야쿠시마는 물의 섬입니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물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물에게 생명을 부여받아 살아가는 생물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를 버리고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상대가 사람이어도 변치 않는 자연의 법도입니다. 이를 깨닫고 저는 세상이 다르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 더, 여러분께 띄워 드리고 싶은 구절이 있습니다. 지난 2월 유명을 달리하신 하이쿠 작가 가네코 도타(金子兜太) 님의 하이쿠입니다.

‘청년 사슴을 사랑했네 폭풍의 사면에서’

이 하이쿠에서 저는 야쿠시마의 단애절벽에 우뚝 선 사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70년대 당시에 사슴은 숲 속에서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으며 사람을 보면 놀라 달아나곤 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마치 새처럼 가뿐이 도약하는 사슴의 모습에 학생이었던 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잃고 경탄했습니다. 가네코 씨의 하이쿠에서는 사슴이 폭풍에 부대끼며 발 디딜 곳 없는 경사면을 나아갑니다. 그 고고한 모습에 지금 격랑의 시대 풍파에 휩쓸린 나 자신이 겹쳐지며 눈을 뗄 수 없게 됩니다. 맞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가네코 씨는 전후 시대를 대표하는 하이쿠 작가로서 늘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왔습니다. 이 하이쿠에는 그러한 가네코 씨의 맑고 산뜻한 혼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모쪼록 여러분도 이 하이쿠에서 용기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현대는 국제화의 시대라 일컬어집니다. 여러분이 미래에 활약하게 될 무대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크게 벗어나 전 세계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구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자연 자원이 많지 않은 일본은 첨단 과학기술로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기를 개발해 잇따라 이를 세계에 전파해 왔습니다. 해외로 진출하는 일본 기업이나 해외에서 일하는 일본인은 최근 급격히 증가했으며 일본 기업이나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수도 증가 일로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흐름을 타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은 물론 해외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잘 알고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화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광범위한 교양과, 상식에 의심을 품고 진리를 탐구하는 기개를 갖춰야 합니다. 이과 계열 학문을 공부하고 기술 부문에 취직한다 해도 국제적인 협상에서는 다양한 문과적 지식이 필요해지며, 문과 계열 일을 하면서 이과 계열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세계와 일본의 역사를 잘 알고 전문가 수준의 질 높은 지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교토대학은 전교 교수들의 협력을 얻어 질 높은 기초/교양 교육 실천 시스템을 구축해 왔습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계층성을 고려해서 클래스 배당 과목과 코스 트리 등을 고안해 교수와의 대화 및 실천을 중시한 세미나 및 소인원 세미나를 배치했습니다. 외국인 교수도 대폭으로 늘려 학부 강의와 실습도 영어로 실시하는 과목을 설치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계에서 실천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5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가동 중입니다. 첨단적 학술 허브로 고등연구원을 설치해 교토대학의 학문을 통해 전 세계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 기존 유학 코스와 함께 본인이 직접 기획해 실행하는 '오모로 챌린지'(오모로: '재미있는'이라는 의미의 간사이 지방 표현)라는 체험형 유학 제도도 구축했습니다. 대학에서의 배움뿐 아니라 외국의 문화와 자연을 직접 체득하는 필드워크형 기획입니다. 외국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배움의 장에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역량을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교토대학은 교육과 연구활동을 더욱 내실화해 학생 여러분이 안심하고 알찬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책으로 교토대학기금을 설립했습니다. 오늘도 가족 여러분께 이 기금에 대한 안내 자료를 나눠 드렸습니다. 입학 기념 특별 기획도 마련되어 있으니 아무쪼록 나눠드린 안내 자료를 봐 주시고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대화를 통해 많은 학우들과 교류하며 미지의 세계를 즐기고 만끽하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는 야마오 산세이 '비파잎 모자 아래서 - 야마오 산세이 시집'(야소샤, 1993년)에서 인용해 한국어로 번역)
(‘ '는 가네코 도타 '가네코 도타 시집 제1권'(지쿠마쇼보, 2002년)에서 인용해 한국어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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