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졸업식 축사 (2018년 3월 27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을 졸업하시는 2,871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장님, 나가오 마코토(長尾真) 전 총장님, 마쓰모토 히로시(松本紘)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식을 맞을 때까지 여러모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토대학이 1897년 창립되어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20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08,614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입학한 이래 어떤 학생 생활을 보내셨나요? 오늘은 부디 지금까지 몇 년간 교토대학에서 지낸 나날들을 떠올려봐 주십시오. 힘든 입시 전쟁을 이겨내고 입학하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계셨나요? 오늘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그 꿈이 크게 바뀌었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시려는 길은 그 당시 꿈과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작년에 Yuval Noah Harari라는 히브리대학 역사학자가 쓴 ‘사피엔스’라는 책이 일본 비즈니스서 대상을 탔습니다. 저는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읽고 재미있어서 서평을 쓰게 되었는데 설마 비즈니스맨들에게 이렇게 사랑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선사 시대 인류의 진화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파악하고 현대에 이르는 문명의 양상을 묻는 것입니다. 이 책에 앞서 선봉자 역할을 한 것이 Jared Diamond의 ‘총, 균, 쇠’일 것입니다. 그는 왜 지역에 따라 문명이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는지에 착안했고, 이는 대륙의 형태와 생태 조건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최근에도 Daniel Lieberman의 ‘인체 이야기’, Gregory Clark의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Matt Ridley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등 매우 긴 시간을 대상으로 한 인류의 역사적 고찰이 연달아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비즈니스맨을 비롯해 일본의 일반 사람들이 내 주위의 사회 현상이나 세계 동정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의 정체를 타임머신을 타고 확인해 보려 하고 있기 때문이 틀림 없습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인간에 대한 정의나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Harari 교수가 처음으로 던진 의문은 왜 인류는 마음 편히 자연에 맡기면 되는 수렵채집 생활에서 가혹하고 병에 걸리기 쉬운 농경 생활로 전환하게 되었나입니다. 이는 기술 혁신에 의해 단번에 꽃핀 게 아니라 열악한 조건 아래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착각이 낳은 현상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실마리는 약 7만 년 전에 일어난 인지 혁명이라 했습니다. 언어의 등장으로 새로운 사고와 의사소통 방법이 싹텄으며,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도처에 진출해 다른 인류종과 동물들을 멸종시키게 된 원인이다, 라고 그는 단정짓습니다.

실은 제가 공부해 온 영장류학의 견지에서 인류의 뇌는 다른 영장류와 비슷하게 사회뇌 차원에서 집단의 크기에 따라 커져 왔다고 여겨집니다. 현대인의 뇌는 약 150명 규모의 집단에서 생활하는 데 적합한데, 이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이후 급속히 증가한 인구에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 인류는 신화를 만들어내 상상 속의 질서를 통해 커다란 집단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화폐란 물질적인 현실이 아니라 상호 신뢰의 제도이며, 서로 다른 문화, 언어, 종교를 연결시켜 글로벌화를 이루어냈다고 Harari 교수는 말합니다.

현대의 문제는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뒷받침하던 자본주의의 원칙, 즉 ‘경제 성장은 최고의 선’이라는 이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교토대학 학생이었던 무렵은 아직 일본이 고도성장 시대여서 바로 눈 앞에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열렸으며 과학기술을 통해 잇달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려는 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지구 환경 악화가 문제시되고 인위적 영향 증대로 인해 오염과 온난화 등 환경 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지구의 열화를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이 여럿 생겨났습니다.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며 인간이 발전하는 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 이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보낸 몇 년 동안에도 세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가 부진한 와중에 구마모토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민족과 종교에 의한 대립이 격화되어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각국의 기존 협력 체제와 연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로의 방향 전환,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이런 사회와 세계의 급속한 움직임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결의를 새로이 다지셨나요?

생명에 관한 개념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iPS 세포 연구는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님을 중심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여기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난치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야마나카 교수님의 간절한 바람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iPS 세포를 이용한 의료 기술, 더 나아가 유전자 편집 기술의 급속한 진전 때문에 생명 환경과 인간관을 둘러싼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유전적 시나리오에 수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의 연령 구성과 인생 계획을 크게 좌우하고 사회의 안정과 동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 의료가 사업과 손잡고 바이오 벤처의 형태로 거대한 부를 창출하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의료 기술과 신약 창출뿐만 아니라, 현대에는 정보 기술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글로벌해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기술이 사고를 선도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정보기기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기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영상이 정보기기를 통해 무료로 유포되며 이제 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귀중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 혁명에는 인문사회학적인 지식과 함께 확고한 인간관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종합적인 학술의 축적을 통해 재검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활약하게 될 것은 Society 5.0이라 불리는 초스마트 사회입니다. 여기서는 ICT 기기가 위력을 발휘해 사람들과 물건을 연결하고 로봇이나 AI가 많은 일을 대체하게 되어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맞닿으며 살아가는 힘을 발휘해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도 지금까지 교토대학을 졸업한 많은 선배들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를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 논의와 학우들은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한 적 없는 미지의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도전정신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중에도 다양한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이미 그것을 발휘해 활약 중인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 교토대학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내보이고 시험할 기회가 앞으로 틀림없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판단을 내려서 직면한 과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이 때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지구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달성해야 하는 커다란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현대는 이 조화가 무너지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공존이 위기에 처해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 주제를 거스르는 사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토론 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과제에 맞서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여주실 자세와 행동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분 뒤를 따르게 될 재학생들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은 크게 갈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 길이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자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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