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대학원 학위 수여식 축사 (2018년 3월 26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실 2,207명 여러분, 석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151명 여러분, 법무박사(전문직) 학위를 받으실 129명 여러분, 박사 학위를 받으실 555명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학위를 받으실 여러분 중에는 유학생도382명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계치를 보면 교토대학이 수여한 석사 학위는78,812개, 석사 학위(전문직)는1,690개, 법무박사 학위(전문직)는2,121개, 박사 학위는 44,078개입니다. 참석하신 부학장, 연구과장, 학관장, 학사장, 교육부장, 연구소장, 리딩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하는 석사와 박사 학위는 박사(문학)와 같이 각 전공 분야가 설정되어 있으며 총22종에 이릅니다. 또 6년 전부터 시작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수료하신 여러분 학위기에는 그 내용이 추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여러분이 밤낮으로 절차탁마하며 역량을 갈고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저는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학위 수여는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노력의 도달점이며 앞으로의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오늘 수여된 학위가 앞으로 인생의 길을 열어 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세계는 지금 정보 사회를 넘어서 초스마트 사회로 변모하려는 중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정보통신 기술은 온갖 정보를 데이터화해 사물과 사람의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드라이버 모니터링 시스템이나 스마트 시티 센싱, 카메라와 AI를 이용한 상품 식별 기술, 다국어 자동번역 기술, 재해정보 분석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AI가 병인을 찾아내고 적절한 치료법을 고안, 적용해서 의료 로봇이 안전한 수술을 집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안전이 곧 안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안심이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안전한 곳에 있더라도 친구에게 배신당한다면 금세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풍요로운 정보의 혜택 속에서 개인은 고독하며 위험에 맞서야 하는 불안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나누는 행복한 시간은 AI가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이는 신체에 기인하는 것으로, 효율화와는 정반대 개념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현명하게 녹여 넣은 초스마트 사회를 구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넘어선 심도 있는 교양과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약 절반이 10년 후에는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오늘 학위를 받으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높은 역량을 구사해 모쪼록 이 어려운 시대에 꽃을 피워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학위가 수여된 논문에 대한 보고서를 훑어보니 교토대학다운 보편적 현상에 착안한 다채롭고 심도 깊은 기초연구가 많다는 인상과 함께 오늘날 세계의 동향을 반영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글로벌화로 인한 이문화와의 교류, 다문화 공생, 사람의 이동과 물건의 유통, 지구 규모의 기후변화와 재해,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법과 경제의 재고찰, 마음의 병을 포함한 많은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등입니다. 이 논문들은 현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나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날카로운 분석의 칼로 해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증거와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탄탄한 자료에 기반한 깊은 고찰에서 우러나온 이러한 제언은 미래를 위한 적절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목만 봐도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져 내용을 읽고 싶어지는 논문과 제 이해력을 초월한 수많은 훌륭한 연구가 학위 논문으로 완성되어 있어 저는 그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런 다양성과 창조성, 첨단성이야말로 앞으로의 세계를 바꾸는 사상과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몇 년간의 연구 생활을 통해 어떤 정신을 갈고 닦으셨나요? 거기에는 교토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 있을 터입니다. 올해는 일본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후쿠이 겐이치(福井謙一) 교수님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후쿠이 교수님은 교토제국대학 공학부를 졸업하신 후 1951년에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연료화학과(석유화학과의 전신) 교수를 역임하시고 ‘프론티어 궤도 이론’을 발표해 세계 화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토대학에서는 물리학상의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교수님과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교수님에 이어 세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되셨습니다. 석유화학 교실이 있던 빨간 벽돌 건물은 옛 제3고등학교 시절 건물을 활용했던 것으로 지금도 요시다 캠퍼스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실은 후쿠이 교수님이 노벨상을 수상한 배경에는 교토대학 공학부의 기초 연구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학부는 실용 학문을 중시하는 교육 연구를 으뜸으로 여기며, 도쿄대학에도 교토대학에도 제국대학으로 출발했던 초기부터 개설되었던 것은 일본이 실용 학문을 중시한 대학을 구상했던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쿠이 교수님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그런 공학의 일반적인 인상과는 전혀 다른 학문의 세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나라현에서 태어난 후쿠이 교수님은 초등학생 때 국어와 역사를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전집 애독자였으며 장래 희망은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런 한편 산과 들의 자연을 가까이 했고 중학교 때는 생물 동호회에 들어가 식물과 곤충 채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 무렵 자연을 ‘문헌’의 형태가 아니라 생생한 체험으로 맛본 것이 나중에 새로운 화학 이론을 생각해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학적 직관’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말씀하셨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과외 활동으로 검도를 배웠으며 수학은 좋아했는데 의외로 화학은 잘 못했다고 합니다. 그랬던 것이 아버님 소개로 당시 교토제국대학 공업화학과의 기타 겐이쓰(喜多源逸) 교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타 교수님의 ‘수학이 좋으면 화학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에 화학이라는 학문은 실험을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험적인 학문으로 여겨져서 구제 고등학교(오늘날 대학 1~2 학년 교양과정에 상당)에서는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이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이와는 정반대 얘기를 듣고 후쿠이 청년은 화학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날카로운 안목과 식견을 느꼈고 이에 고무되어 기타 교수님 문하로 들어가 화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 후쿠이 청년에게 기타 교수님은 ‘응용을 하려면 기초를 하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당시에 공학부 공업화학과 학생은 이학부 화학과 과목도 수강했는데 후쿠이 청년은 다양한 화학 기초과목을 수강한 후 기초를 화학 그 자체가 아니라 물리학이라 생각했으며, 특히 양자역학을 집중 공부했습니다. 아직 새로운 분야였던 양자역학을 독일어 원서로 읽고 미래에 화학을 수학화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기타 교수님의 수제자 중 한 명이었던 고다마 신지로(兒玉信次郎) 교수님도 물자와 설비가 없던 전후 시대에 기초과학을 다져놔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후쿠이 교수님 등과 함께 교수와 학생의 경계를 넘어 이론물리학의 첨단 분야까지 넘나들며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 심도 있는 학제적 논의가 결국 프론티어 궤도 이론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학문을 하려면 그 시대에 대한 감성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학문을 익히더라도 폭넓은 교양과 기초가 필요하다는 것을 후쿠이 교수님이 남기신 발자취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자연과 어울렸던 경험이나 다른 분야에서 길러낸 식견이 미지의 영역이나 새로운 과제를 발견하는 힘을 키워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적으로 과학에 대한 태도가 매우 획일적이며 특히 기술과 접목시켜 사회에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혁신을 원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내 학문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 지식과 예술을 폭넓게 접하고 연구자 개개인이 자신만의 감성과 과학적 직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교토대학에서의 연구 생활을 통해 다른 분야에 널리 눈을 돌려 활발한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교토대학에서 배운 증거이며 여러분의 앞으로의 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학위 논문은 미래 세대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며 여러분이 남기는 발자취는 다음 세대의 목표가 됩니다. 그 가치는 여러분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의 자긍심과 리터러시를 유지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과학자들의 부정 행위가 잇따름에 따라 사회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과 경험을 살려 아무쪼록 찬란히 빛나는 인생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