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박사 학위 수여식 축사(2017년 9월 25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

오늘 교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실 222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학위 취득자 여러분 중에는 유학생 59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한 박사 학위는 이로써 누계 43,523개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부학장, 연구과장, 학관장, 학사장, 교육부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여러분의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토대학이 수여하는 박사 학위는 박사(문학)와 같이 각 전공 분야가 설정되어 있으며 총 22종에 이릅니다. 또 5년 전부터 시작된 리딩 대학원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수료하신 여러분 학위기에는 그 내용이 추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여러분이 밤낮으로 절차탁마하며 역량을 갈고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저는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학위 수여는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노력의 도달점이며 앞으로의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오늘 수여된 학위가 앞으로 인생의 길을 열어 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저는 총장에 취임한 이래 대학을 사회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창으로 삼는 WINDOW 구상을 제창해 왔습니다. 세상이 대학에 기대하는 교육, 연구, 사회공헌이라는 세 가지 역할 중 교육을 대학 전체의 공통 미션으로 삼고 전교 차원의 협력하에 유능한 학생과 젊은 연구자들의 역량을 키워 각자 활약할 수 있는 장으로 내보내 왔습니다. WINDOW 구상의 첫 글자 W는Wild and Wise, 야생적이고 현명한 역량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I는 International and Innovative. 국제성이 풍부한 환경 속에서 항상 세계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고 전 세계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이노베이션을 창출하려는 시도입니다. N은 Natural and Noble. 교토대학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년 고도에 위치하며 훌륭한 자연 경관과 역사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 있습니다. 예로부터 교토대학의 연구자는 이러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을 접하며 많은 새로운 발상을 키워 왔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교토의 역사적 유산을 접하는 기회를 늘려가며 높은 품격과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다짐하고 고결한 태도를 갖춰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D는 Diverse and Dynamic. 글로벌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현대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섞여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토대학은 다양한 문화와 생각에 대해 언제나 열려 있으며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한편 급속한 시대의 흐름에 좌우되는 일 없이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해 유구한 역사 속에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정의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O는 Original and Optimistic. 기존 상식을 뒤엎는 발상은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체험을 토대로 태어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훌륭하다고 감동한 사람의 행위와 언사를 잘 이해하고 동료들과 이를 공유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사고를 심화시켜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다 막히거나 동료에게 비판받아 비관적인 마음이 들 때 이를 밝게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실패나 비판을 더욱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거름 삼아 이색적인 생각을 가미해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합니다. 마지막 W는 Women, leaders in the Workplace. 여성이 일하기 좋고 면학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를 통해 '여성 리더 육성', '가정 생활과의 양립 지원', '차세대 육성 지원'을 추진해 왔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진출할 여러분이 모쪼록 그 모범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살려 남녀가 차별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여러분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오늘 학위가 수여된 논문에 대한 보고서를 훑어보니 교토대학다운 보편적 현상에 착안한 다채롭고 심도 깊은 기초연구가 많다는 인상과 함께 오늘날 세계의 동향을 반영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글로벌화로 인한 이문화와의 교류, 다문화 공생, 사람의 이동과 물건의 유통, 지구 규모의 기후변화와 재해,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법과 경제의 재고찰, 마음의 병을 포함한 많은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등입니다.

이 논문들은 현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나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날카로운 분석의 칼로 해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증거와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탄탄한 자료에 기반한 깊은 고찰에서 우러나온 이러한 제언은 미래를 위한 적절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목만 봐도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져 내용을 읽고 싶어지는 논문과 제 이해력을 초월한 수많은 훌륭한 연구가 학위 논문으로 완성되어 있어 저는 그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런 다양성과 창조성, 첨단성이야말로 앞으로의 세계를 바꾸는 사상과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몇 년간의 연구 생활을 통해 어떤 정신을 갈고 닦으셨나요? 거기에는 교토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 있을 터입니다. 작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교수님은 도쿄대학 출신이신데 대학원 박사과정 중 1970년에서 71년까지 2년에 걸쳐 교토대학 이학연구과로 파견 연수를 와서 공부하셨습니다. 이학연구과에 새로 설치되었던 생물물리학교실에서 대장균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는 콜리신 효소를 연구했습니다. 올해 7월 교토대학 명예박사 칭호를 수여받는 자리에서 오스미 교수님은 추억에 잠겨 그 당시 받았던 인상을 알려 주셨습니다. 당시 교토대학은 스스로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는 주제에 대해 여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며 그것이 이후 오랜 연구 인생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 환경은 오스미 교수님뿐 아니라 카데린을 발견하신 다케이치 마사토시(竹市雅俊)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젊은 지성들을 키워내 왔습니다. 실로 자유로운 학풍이라는 교토대학의 전통적인 학문 환경이 그 힘을 발휘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1970년 교토대학에 입학한 저는 마침 그 무렵 오스미 교수님과 같은 이학부 구내에서 학부 시절을 보냈습니다. 오스미 교수님과는 다른 자연인류학이라는 학문 분야였지만 역시 비슷하게 자유로운 학풍을 구가했습니다. 교수님을 '~ 상('님'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경칭)' [A2] 이라 부르며 연구실에서 논의할 때는 학생들도 대등한 입장에서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그곳에는 있었습니다.

오스미 교수님은 박사 과정을 마치고 2년 후에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후에도 취직하지 않고 미국 록펠러 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는데 연구 주제를 탐색하는 데 대단히 고생하신 듯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진 효모와의 만남이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오토파지라는 세포 재활용 시스템의 발견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효모가 기아 상태에 빠지면 세포 내부를 재생산해 포자를 형성하고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데 주목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기아 상태에 둔 액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했을 때 오스미 교수님은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다니셨다 합니다. 그 기쁨과 흥분이 어떤 느낌인지 저는 너무나도 잘 압니다. 저도 필드워크 중에 그런 순간을 몇 번인가 맛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발견을 논문으로 완성시키고 그 성과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연구자로서는 중요하지만, 연구자의 기쁨이란 모름지기 그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현상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발견에 가치를 더하는 끈질긴 노력이 있어야만 형태가 잡히게 됩니다. 오스미 교수님은 오토파지를 발견한 후에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데 1년, 논문을 투고한 후 수리되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새로운 현상이 인정받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나 개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재미있다고 생각한 대상과 현상을 끈질긴 인내심으로 추적하고 이를 발견으로 연결시키는 평온하고 자유로운 학문 환경과, 발견한 것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만들기 위한 수준 높은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교토대학은 지금까지 그런 환경을 유지하는 데 온 힘을 다해 왔습니다. 단 최근 대학을 둘러싼 상황과 학생 여러분의 의식이 눈에 보이는 성과나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하려는 경향을 띠기 시작한 것은 유감스럽다 느낍니다. 오스미 교수님도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바로 세상에 도움이 될지 여부를 따지는 사고방식이 요즈음 강해졌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먼저 차지하는 자가 이기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논문을 양산해내야 하는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과학을 풍요롭게 해 주지 않습니다. 사회에 여유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사이언스도 경쟁 세계가 되면 진정한 의미의 과학을 하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연구자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사이언스에 몰두하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배짱과 한 두번 정도의 실패는 두려워하지 않는 각오가 필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교토대학에서의 연구 생활을 통해 발견의 기쁨과 논문으로 완성하기까지의 고생을 충분히 맛보셨을 거라 봅니다. 나와 같은 분야, 그리고 다른 분야 동료들과 활발한 대화를 통해 나만의 생각과 세상을 구축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이는 자유로은 학문의 중심지 교토대학에서 배운 증거이며 여러분의 앞으로의 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학위 논문은 미래 세대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며 여러분이 남기는 발자취는 다음 세대의 목표가 됩니다. 그 가치는 여러분이 앞으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과 리터러시를 유지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과학자들의 부정 행위가 잇따름에 따라 사회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연구자로서의 자긍심과 경험을 살려 아무쪼록 찬란히 빛나는 인생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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