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졸업식 축사(2017년 3월 24일)

제26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 壽一)

오늘 교토대학을 졸업하시는 2,888명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전 총장님, 나가오 마코토(長尾真) 전 총장님, 오이케 가즈오(尾池和夫) 전 총장님, 참석하신 이사, 부학장, 학부장, 부국장을 비롯한 교직원 일동 모두 함께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졸업식을 맞을 때까지 여러모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가족 및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토대학이 1897년 창립되어 1900년에 제1회 졸업식을 치른 이래 120년에 걸쳐 교토대학이 배출한 졸업생은 여러분을 포함해 205,859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입학한 이래 어떤 학생 생활을 보내셨나요? 오늘은 부디 지금까지 몇 년간 교토대학에서 지낸 나날들을 떠올려봐 주십시오. 힘든 입시 전쟁을 이겨내고 입학하신 여러분은 교토대학에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계셨나요? 오늘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그 꿈이 크게 바뀌었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시려는 길은 그 당시 꿈과 어떻게 이어져 있나요?

작년 가을, 저는 44년 만에 시가 고원에 있는 교토대학 휘테를 찾았습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까지 여기서 노르딕 스키 연습에 매진했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옛 친구들이 많이 모여 그 시절 얘기를 꽃피웠습니다. 제 진로는 이 휘테에서 보낸 생활을 통해 크게 바뀌었습니다.

제가 1학년이던 가을에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도쿄 이치가야 육상자위대 총감실에서 할복 자살을 했습니다. 그 뉴스를 저는 대학 구내 서부 생협식당에서 TV로 보았습니다.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할복 자살이라는 전시대적인 행위가 바로 25년 전 전쟁 중에는 당연시되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또 그 때 미시마와 방패의 모임이 제창한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를 군대로 만들자'는 격문에 자위대원조차 아무도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본인에게 씌여서 신체를 지배해 온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 내 존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자기 의사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어떤 제약이 가해져 있는지. 사람이 몸 바쳐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는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험한 적 없는 노르딕 스키라는 스포츠에 몰두한 것은 오로지 내 몸의 가능성을 알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눈 위에서 일본원숭이를 관찰하던 사람을 만나 교토대학에 기묘한 학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신체를 일단 벗어나 원숭이가 되어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영장류학입니다. 그 재미있는 발상에 감동한 저는 설산에서 원숭이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고릴라를 쫓는 나날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연이었다고는 하나 신기한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장이 되기 몇 년 전에 저는 예기치 못하게 그 시절 물음에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20세기 초반 사상을 대표하는 스페인 철학자Ortega y Gasset의 Man has no nature, what he has is history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둘러싸고 문화인류학자와 생물인류학자가 두 사람씩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토론회가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 초대받은 저는 생물인류학자 입장에서 그때까지 제가 체험해 온 영장류학을 이용해 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영장류 일반에서 널리 보여지는 근친과의 교미를 피하는 경향을 이용해 인간은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규범을 만들었으며 이는 아직도 인간 사회의 근본 원리로 남아 있다. 따라서 Man is still traveling between nature and history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류학 및 민족학 국제연합 회의장에서 제 의견은 적지 않은 참가자들에게 동의를 얻었습니다. Ortega가 살았던 시대, 인간과 자연을 엄격히 구분하던 시대에는 제 의견이 받아들여졌을 리 없습니다. 한 세기를 지나 인간관이 크게 바뀐 점, 생물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저는 강하게 느꼈습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지적 탐구의 장임과 동시에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Ortega는 대학 교육이 1) 교양(문화) 전달, 2) 전문직 교육, 3) 과학 연구와 젊은 과학자 양성이라는 3가지 기능으로 구성된다 정의하고 그 중에서도 교양을 가장 중요한 대학의 기능으로 규정했습니다. 교양(문화)이란 각 시대가 소유하고 있는 살아 있는 이념의 체계이다. 우리가 '인간적 삶(Vida humana)'이라 부르는 것의 현실, 즉 우리의 삶,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삶은 생물학 내지 유기체 과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 무엇이다. 생물학은 다른 모든 과학과 마찬가지로 몇몇 사람이 그것에 그들의 '삶'을 바치는 하나의 과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삶'이라는 말의 원초적인 의미, 또 그 진정한 의미는 생물학적(biológico)인 것이 아니라 전기적(biográfico)이다. 삶이란 우주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며 세계의 모든 사물, 모든 존재 사이에서 살아 나간다는 커다란 과제를 말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즉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 세상에 맞서는 것, 세상 속에서 일하고 세상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 말들 속에서Ortega의 Man has no nature, what he has is history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Ortega가 대학의 기능에 대해 말했던 것은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는 스페인 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몇 년 후에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발발해 프랑코 장군에 의한 독재 정치 시대가 시작됩니다. Ortega는 인간의 '삶'을 확실한 세계관에 의해 수립하기 위해 대학이 커다란 책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삶은 모두, 싫든 좋든, 자기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세상에 대한, 또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자기 행동에 대해 어떠한 지적 해석을 마련해 환경 내지 세상으로부터 직접 받는 인상에 반응하도록 대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고Ortega는 말했습니다.

이 이념은 지금도 대학에 강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개교 이래 교토대학은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을 전통으로 삼아 왔습니다. 학생도 교직원도 세간 상식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이 세상을 구성하는 진리의 탐구와 동시에 앞 세대가 남긴 지식의 집적체를 마주하며 스스로가 살아갈 힘을 갈고 닦아 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를 이용해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의 살아가는 힘은 그 시절Ortega가 원했던 것처럼 이 시대 이념의 높이에 도달해 있는지요?

여러분이 교토대학에서 보낸 몇 년 동안에도 세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가 부진한 와중에 구마모토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환경 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지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급속도로 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인간의 활동에 다양한 규제가 가해지게 되었습니다. 민족과 종교에 의한 대립이 격화되어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각국의 기존 협력 체제와 연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로의 방향 전환, 이런 사회와 세계의 급속한 움직임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결의를 새로이 다지셨나요?

지식을 얻는 방법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정보기기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기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영상이 정보기기를 통해 무료로 유포되며 이제 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귀중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메일과 휴대전화가 주요 전달 수단이 되었으며 편지를 쓰는 일은 좀처럼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대화만은 마음을 서로 전하고 논의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낳는 수단으로서 지금도 계속 살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활약하게 될 것은 Society 5.0이라 불리는 초스마트 사회입니다. 여기서는 ICT 기기가 위력을 발휘해 사람들과 물건을 연결하고 로봇이나 AI가 많은 일을 대체하게 되어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맞닿으며 살아가는 힘을 발휘해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도 지금까지 교토대학을 졸업한 많은 선배들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를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 논의와 학우들은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에는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한 적 없는 미지의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교토대학이 자랑하는 도전정신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중에도 다양한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이미 그것을 발휘해 활약 중인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 교토대학에서 갈고 닦은 역량을 내보이고 시험할 기회가 앞으로 틀림없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판단을 내려서 직면한 과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의견만 들어서는 결국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에서 배양한 ‘대화를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학풍’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토대학은 ‘지구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달성해야 하는 커다란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현대는 이 조화가 무너지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공존이 위기에 처해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 주제를 거스르는 사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토대학의 자유로운 토론 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과제에 맞서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여주실 자세와 행동이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분 뒤를 따르게 될 재학생들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갈 길은 크게 갈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작년에 제가 교토대학 휘테에서 체험했듯 미래에 그 길이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교토대학 졸업생으로서 자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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